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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쉴새 없이 큭큭 웃음이 터지는데 가볍지 않다. 만화적인데 허황함과는 거리가 멀고, 신파인데 천박으로 빠지지 않는다. 어설픈 몸짓인 것 같지만 아마추어의 설익음은 없다. ‘고선웅표’ 연극의 특징이다. 그의 연극은 늘 절묘한 선을 지킨다. 어찌 보면 눙치듯 몸에 밴 리듬에서 나오는 것 같고, 어찌 보면 정확한 계산 끝에 얻어진 철저한 전문성처럼 보인다. 22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역시 ‘고선웅표’ 인장이 선명히 찍혀 있다. 한마디로 보기에 재밌으면서 울림이 깊다. 한참을 웃다가 조용히 무대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먹먹함이 내려앉는다.

연극은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복수가 정답인가. 복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 이야기는 중국 진나라 도안고 장군이 정적 조순에게 누명을 씌우며 시작한다. 조순의 9족 일가친척 300명이 억울하게 몰살된다. 손자 조씨고아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시골 의원 정영에게 의탁된다. 여기서부터 정영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정영은 아이를 살리고 원혼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 무거운 약속을 짊어진다.

조씨고아를 살리는 과정에서 숱한 목숨들이 스러진다. 어머니는 자결하고, 의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영은 마흔다섯에 본 늦둥이 아들을 조씨고아로 위장해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다. 제 몸도 못 가누는 젖먹이가 짊어진 복수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정영은 20년간 천추의 한을 되새김질하며 복수의 칼날을 벼린다. 이 작품이 비극일 수밖에 없는 건 칼날을 휘두른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 훤히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객석에서 유쾌하게 터지던 웃음은 뒤로 갈수록 씁쓸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조씨고아’는 13세기 원나라의 기군상이 쓴 잡극이다. 기군상은 진나라 때 역사적 사건에 살을 붙여 희곡으로 만들었다. 조씨 가문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등 여러 고전에서 발견된다. ‘조씨고아’는 18세기 유럽에 소개돼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까지도 서구권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국 고전이어서인지 연극 속 인물들의 선택은 극단적이고 잔인하다. 극도로 간악하고, 극도로 ‘의’를 강조한다. 고선웅 연출은 대의를 중시하는 인물들의 평면적 결단은 호쾌하게 지나친다. 생판 남을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의인들에게서 심적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연극이 현대 관객에게 소구하는 건 ‘필부’ 정영의 모순된 슬픔이다. 정영은 입체적 인물이다. 조씨 가문에 딱히 은혜를 입지도 않은 그는 거듭 거부하다가 끝내 아기를 떠안는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기에 애끊는 비통 속에 친아들을 포기한다. 요즘 가치관으로는 선뜻 이해 안 되는 행동이기도 하다. 연출가는 원작에 없는 아내를 등장시켜 이 부부의 아픔을 극대화한다. 정영이 조씨고아를 안은 채 “이 까짓게 무어라고”하고 절규할 때 관객의 뇌리에도 같은 물음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고선웅 연출은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인생은 갑자기 돌아보면 짧은 꿈이니 좋게만 사시다 가시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상연 시간은 160분에 이르지만 한순간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성광, 장두이, 이형훈, 이지현 등 배우들의 노련하고 정확한 연기는 작품을 빈틈 없이 끌고 간다. 노래하듯 운율을 살린 고선웅의 각색 역시 감칠맛이 난다. 무대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이번에 의자 하나 없이 무대를 텅 비웠다.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긴 커튼만이 배우들의 등·퇴장을 돕고 시공간을 나눈다. 넓은 마루는 시골길에서 궁, 재상의 저택으로 자유자재로 변한다. 배우들의 연기로만 채운 빈 공간은 허전함 없이 꽉 찬 느낌이다. 2만∼5만원. 1644-2003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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