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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댄 프라이스의 '도덕적 책무'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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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27 14:13:38 수정 : 2015-10-27 15: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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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연봉 7만달러 인상 약속 6개월…이 회사에 무슨 일이? 미국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회사 ‘그래비티페이먼츠’의 댄 프라이스(31·사진) CEO는 4년 전 밖에서 담배를 태우던 부하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 큰 충격을 받았다. 분위기가 어두워 보여 “무슨 일 있나요”라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은 것이다. “당신이 나를 착취하고 있잖소.”

댄 프라이스 최고경영자(앞줄 가운데)와 직원들.
사진 = 그래비티페이먼츠 페이스북
프라이스는 최근 미 경제전문매체 INC닷컴과 인터뷰에서 “평소 내성적인 직원의 입에서 이런 공격적인 말이 나와 깜짝 놀랐다”면서 2011년의 일화를 털어 놓았다. 기술직으로 근무하던 해당 직원은 당시 3만5000달러 연봉을 받고 있었다. “당신의 급여는 시세대로 책정돼 있어요. 뭔가 다른 데이터가 있다면 내게 알려줘요. 당신을 착취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에도 적대감이 가득했다. “문제는 데이터가 아니에요. 당신의 말은 꼭 돈을 충분히 벌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프라이스 CEO는 이 일로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과도한 카드 결제 수수료로 고생하는 자영업자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2004년 형과 함께 회사를 차려 더 적은 수수료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며, 직원들도 잘 대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괜한 비난의 희생양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를 격려할수록 그의 기분은 나빠져만 갔다. 4년간의 고속성장의 결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물거품되는 경험을 한 뒤 직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해 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기 침체로 너무 큰 타격을 받은 나머지 임금 통제로 (향후 위기에) 대비해 왔는데, 그게 우리 직원들에게 상처를 줬던 겁니다.”

프라이스는 이후 3년간 직원들의 임금을 20% 인상했다. 그래도 회사의 이익 성장률은 임금 상승률보다 높았다.

마침내 그는 지난 4월13일(현지시간) 재계에 커다란 ‘폭탄’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연봉(110만달러)를 깎고 전직원 120명의 최저연봉을 3년 내 7만달러(약 8000만원)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의 연봉은 즉각 7만달러로 내리고 최저연봉을 5만달러로 인상했다. 최저연봉은 향후 2년간 1만달러씩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연봉 5만∼7만달러를 받는 직원들의 임금은 5000달러씩 인상키로 했다. 2주 동안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쓰나미 같은 반응이 몰려왔다. 소셜미디어에 5억건 이상의 반응이 올라왔고 이 소식을 다룬 NBC방송 뉴스 동영상은 역대 최다 공유 횟수를 기록했다. 프라이스 CEO는 자기 몫을 줄여 노동자를 돕는 ‘현대판 로빈후드’로 추켜세워졌다. 2000년 이래 실질임금 인상률이 제자리를 걷고 있는 미국 내 ‘임금인상-소비지출 증가-경제성장’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쟁에도 불이 지펴졌다.

역풍도 컸다. 폭스뉴스 등 보수 성향 언론들은 과도한 임금이 노동자를 게으르게 하고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뭇매를 가했다. 실제로 직원 2명이 “회사에 출근도장만 찍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돈을 번다”며 사표를 냈다. 수백억원대 자산가인 방송인 러시 림바우는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이 회사를 ‘왜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연구 사례로 삼아야 한다”고 조롱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어떤 운명을 맞고 있을까. INC닷컴은 그래비티가 그간의 비관론을 잠재우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매출과 이익이 종전의 2배로 늘었다. 가격 인상, 서비스 악화를 우려한 일부 고객이 계약을 취소하긴 했으나 2분기 고객 유지비율은 95%로 3년간 평균 91%보다 오히려 상승했다. 월 평균 30건이던 고객 문의는 2000건으로 급증했다.

회사를 떠난 이들의 자리는 신규 인력으로 채웠다. 프라이스의 ‘깜짝 선언’ 직후 한주 동안 이 회사에는 이력서가 4500통이나 몰렸다. 지난 9월에는 태미 크롤(52·여)이 야후 임원직을 때려치우고 그래비티에 입사했다. 연봉이 80%가량 줄었다는 크롤은 “수년간 돈만 보고 살았다. 이제는 뭔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사 영업사원인 개럿 넬슨(31)은 올해 연봉이 5000달러 올랐다. 그는 다섯 자녀의 교재 구입비와 음악 수업료로 이 돈을 쓴다. 프라이스 CEO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넬슨은 “(고향인) 아이다호 사람들은 다들 프라이스가 미쳤다고 말하지만, 임금 인상이 직원들의 활력을 북돋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래비티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사이 프라이스는 자신의 주식을 팔고 은퇴 계좌를 청산했을 뿐 아니라 자기 소유 집 두 채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300만달러를 추가로 회사에 투자했다.
4년 전 임금 문제를 제기하던 직원을 이해하지 못했던 프라이스 CEO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죠. 그런에 어째서 저한테는 남들의 10년치 연봉이 필요한 겁니까.” 그는 적당한 수입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프라이스는 이어 “연봉 인상은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라 도덕적 책무”라며 “이 조치로 인해 회사가 침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업계 전반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사진 = 그래비티페이먼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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