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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 아닌 ‘通一’ 이뤄야 민족 비원 풀린다

입력 : 2015-04-24 20:59:20 수정 : 2015-04-24 21: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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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사건으로 20년간 복역한
신영복 교수 ‘25년 강의’ 정리
和同담론 빗대 통일대박론 비판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돼”
신영복 지음/돌베개/1만8000원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신영복 지음/돌베개/1만8000원


신영복(74)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2004년 ‘강의’를 낸 지 11년 만에 역작을 출간했다. 신간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가 그것이다.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사형을 선고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0년 20일 동안 복역했다.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 대학강단에 섰다.

이 책은 성공회대학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저본으로 해 저자의 견해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책을 통해 그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신 교수의 글과 사상을 접할 수 있다. 군사독재정권의 패악과 고통을 오로지 인내로 견뎌내면서 사색과 진리 탐구로 승화시킨 이 시대의 지성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신 교수는 애지중지해온 동양고전을 텍스트로 선정해 오늘날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진단한다. 책은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풀이한 제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과 기나긴 수형생활 동안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엮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됐다.

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패권주의이며 동(同)의 논리라고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논어의 ‘화동(和同)’ 담론은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를 줄여 붙인 이름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간 옥고를 치른 신영복 교수는 ‘강의’ 등의 저서를 통해 존재와 사회, 역사와 현실에 대해 깊이 있는 견해를 제시해왔다.
화동은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군자와 소인이 대비되는 개념인 것처럼, 화(和)와 동(同)도 대비 개념으로 읽어야 한다. 화동 담론은 춘추시대 유가학파의 세계 인식이다. 전쟁을 통한 병합에 반대하고 큰 나라, 작은 나라, 강한 나라, 약한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和)의 세계를 주장한다. 화(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반면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다.

그가 화동 담론을 거론한 이유는 오늘날의 패권적 구조를 조명하기 위해서다. 패권적 질서는 이 시대의 대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달러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강대국의 폭력이며 동(同)의 논리다. 엄청난 파괴와 살상으로 점철되는 패권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화동 담론은 우리나라의 통일 담론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신 교수는 “나는 통일(統一)을 통일(通一)이라고 쓴다”면서 “평화 정착과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通一’이다. ‘通一’이 되면 언제일지 알 순 없지만 ‘統一’로 가는 길 또한 순조로울 것”이라고 한다.

신 교수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지극히 경제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민족의 비원이자 눈물겨운 화해인 통일을 ‘대박’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통일을 경제 논리로 본 것이다. 박 대통령 말처럼 통일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온다면 그것은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일 수밖에 없다. 統一은 通一로서 충분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신 교수(맨 왼쪽)가 통혁당사건으로 1969년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신 교수는 감옥생활을 대학시절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자살하지 않은 건 ‘햇볕’ 때문이었다고 술회한다. 군사독재에의 저항, 민주화, 민중 투사 같은 명분 때문이 아니었다고 한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 만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절정의 순간’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고 신 교수는 회고한다.

혹독한 고문으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나가는 엄혹한 독재시절 사형수로서 1년 남짓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겪은 체험은 혹독했다.

통혁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4명 중 3명은 사형이 집행됐고 신 교수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고 정치현실을 탓하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자신을 옭아맨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신 교수 글에서는 징역살이의 고달픔, 괴로움 등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반듯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의 나약함을 독재정권에 보여주지 않으려는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감옥에서 역사와 사회, 그리고 인간을 배웠다. 특히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장기간의 수형생활에서 얻은 값진 결과물이라고 한다. 자신 같은 사형수들 삶을 보고 인간을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기수라는 절망감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신 교수의 인내와 성찰은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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