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의 폭증에는 정부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금융당국은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은행권에 기술금융 확대를 독려했다. 동참하지 않으면 금융인으로서 역사적 사명이 없는 것이라고 물아세우기까지 했다. 금융당국은 개별 은행으로부터 기술금융 일일실적을 보고받아 10월부터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시큰둥하던 은행들이 낌새를 감지하고 대출 경쟁에 나섰음은 불문가지다.
기술금융 확대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량 기술을 지닌 중소기업이 담보가 없어 자금난에 처하는 현실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은행이 기술을 평가해 신용대출을 해주면 많은 기업은 성공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급작스런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속도전 후유증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은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기존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바꾸거나 자영업자 대출을 끼워 넣는다. 기술신용평가서와 같은 서류를 첨부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수법도 동원된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명멸하는 금융상품은 그동안 숱하게 많았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치 아래 녹색금융이 활개를 쳤다. 녹색금융이 출범한 2009년에만 42개의 녹색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상품은 정권이 바뀌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김대중정부 때에는 정보기술(IT) 벤처 육성책, 노무현정부에서는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과 관련된 금융상품이 등장했지만 이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기술금융이 과거 ‘코드금융’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차근차근 기반을 다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평가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하고 은행의 심사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처럼 실적에 연연하면 숫자 놀음만 하고, 부실대출만 키울 따름이다. 빨리 달리려면 고속도로부터 깔아야 한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맬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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