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경계를 넘어 소통, 새로움 도전하는 건축 GOOD!

입력 : 2014-07-17 21:07:19 수정 : 2014-07-17 21:07: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98〉 좋은 건축 #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good, bad & ugly. 이 형용사들의 나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창때 만들었던 영화 제목이다. 몇 년 전 흥행작인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 제목의 원형이기도 한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석양의 무법자’로 제목을 바꿔 달고 상영되었었다.

당시에 크게 인기를 끌었고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굿, 배드 앤드 어글리’에는 잘생긴, 나쁜, 못생긴(혹은 험악한) 사람이 나온다. 그냥 웃으며 보라는 강한 사인으로도 느껴진다. 이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리는, 정통 서부극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탈리아산 서부극의 원조 격인 영화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된 것은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과 추악한 것들이 있고, 우리는 늘 그 사이에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혹은 사회로부터 가치판단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가라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좋은 건축과 나쁜 건축 등을 이야기해 보라는 요청도 많이 듣는다.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대상을 일반화하거나 단순화하거나 하는 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므로, 그런 기준이나 판정은 무척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내게 ‘좋은 건축’에 대해 묻는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좋은 건축이란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건축이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고, 속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쁜 건축은 이야기가 없이 으스대기만 하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으스댈 뿐 아니라 비어 있는 내용을 감추기 위해 허장성세를 부리는 건축, 혹은 그 허장성세로 말미암아 주변에 무척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그런 건축이 나쁜 건축이다.

얼마 전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한 부처에서 건축강좌를 요청해 와서 다녀왔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어져 과천과 서울에 있는 정부부처들이 하나씩 옮겨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먼 나라 이야기처럼 아련하게 듣기만 하던 차라, 궁금함을 안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워낙 큰일이었고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일이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소식도 접하고 조감도로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실물을 보게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지나친 규모와 스케일로 으스대는 듯한 세종시 정부청사.(출처: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홈페이지 www.macc.go.kr)
고속도로에서 세종시로 접어들자 산과 들로 이루어진 동네에 새로 닦인 큰길이 열리고, 그 옆에 어색한 표정으로 꾸부정하게 서 있는 아파트들이 줄지어 다가왔다. 이윽고 엄청난 스케일로 파닥거리는 뱀장어처럼 생긴 길고 무척 큰 건물이 아직도 흙먼지 날리는 세종시에서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전체의 길이가 6㎞가 넘고 7㎞는 조금 못 된다는 한 줄로 엮인 건물이었다. 엄청난 높이와 그 높이에 비례하여 껑충한 건물의 다리들.

마치 나는 거인국에 잘못 들어온 걸리버 같았다. 길고 긴 다리가 성큼 나를 밟으며 지나 갈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지나친 규모와 스케일은 누구에겐가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인간이 이런 공간에서 계속 생활하고 업무를 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사람은 필요에 의해 공간을 만든다. 사람의 공간은 그 필요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는데, 어디까지나 그 공간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러나 건축은 번번이 용도와 기능적 합리성보다는 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하곤 했다. 그건 대부분 전제적인 시대의 군주들의 작태였다. 그들은 자신을 신과 동일시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어떤 의미로 본다면 그 역시 기능에 충실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으스대는 건축은 정말 나쁘고도 이상한 건축이다.

2014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OBBA가 설계한 〈Beyond the Screen〉.(사진:신경섭, 출처:www.o-bba.com)
# 무한도전,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 방식

우리 집에는 골동품 수준은 아니더라도 무척 낡은 텔레비전이 있다. 요즘 날고 기는 첨단의 고성능 텔레비전들이 하루가 멀다고 새롭게 개발되어 시중에 나온다. 그 텔레비전들은 아주 크고 아주 선명하고 더군다나 아주 얇고 가볍다. 그러나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침침하고 두껍고 아주 무겁다. 20년이 넘은 물건이니, 전자제품의 일반적인 사이클로 본다면 환갑, 진갑 다 보낸 퇴물급이다.

큰 덩치로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그 텔레비전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켜서 본다. 언젠가부터 드라마나 교양, 오락은 물론 뉴스마저 보지 않게 된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잠에서 깨워 정기적으로 보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2005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했고 여러 명의 남자 연예인들이 나와서 계속 무언가 새롭고 엉뚱한 일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어쩌다보니 1회부터 보게 되었다. 초반에는 출연진이 소와 줄다리기 시합을 한다거나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한다거나 하는, 말 그대로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우리도 그냥 토요일 오후에 저녁을 먹으며 특별한 의미를 찾는다거나 특별한 목적 없이 편하게 웃으며 보곤 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9년 넘게 계속 ‘본방사수’를 하고 있다. 그 사이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대다수는 처음 시작할 때 참여했던 출연진이 계속 나오고 무모하지만 진솔한 애초의 정신 역시 변함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계속 끌어당기는 것은 텔레비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주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는, 이를테면 직접 피부가 닿는다거나 직접 대화를 할 수 없는 차가운 매체답지 않은 제작진의 태도이다. 그들은 시청자에게 자꾸 말을 건네고 고민을 같이 나누려고 시도한다. 언젠가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에 자막이 깔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자막은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이나 출연자의 대사인 경우가 많다. 

벽돌 스크린은 바깥에서 보면 멋진 문양이 되고, 내부에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에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선사한다. (사진:신경섭, 출처:www.o-bba.com)
그런데 무한도전은 자막이 마치 또 다른 출연자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시청자와 같은 관점에서 출연자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거나 혹은 비판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연출하는 프로듀서의 직접 육성이 들리기도 한다.(물론 글로)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맞은편 화면 속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소파에 앉거나 나란히 쿠션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서 보는 것 같다. 방송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화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작진과 한 배를 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척 생소한 장치였다.

9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일화가 있었는데,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25년 후’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었던 좀비 특집편이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블록버스터급의 기획으로, 굉장히 큰 야외 세트장을 빌리고 엑스트라를 수백명 동원한 특집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합심해 좀비를 퇴치하는 백신을 찾아내 지구를 지킨다는 다소 억지스럽고 아이들 장난 같지만 여전히 무한도전스러운 내용이었다. 상황을 숙지하자마자 멤버들은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제작진이 내준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슬슬 흥미진진해질 무렵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멤버의 실수로 기껏 손에 넣은 백신 병이 땅에 떨어지고 망연자실한 멤버의 옆모습이 나오며 자막이 흐르기 시작한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방식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숙하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한 한탄과 이후의 상황, 사과, 그리고 결의로 끝나는 자막은 프로듀서의 혼잣말이기도 하고,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부탁을 담은 내용이기도 했다. 

벽돌 스크린에 의한 빛이 화사한 중정에 면한 중층 형식의 계단 부분. (사진:신경섭, 출처:www.o-bba.com)
# 주변과 교류하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건축

물론 이 프로그램은 녹화를 하고 일정 시간 동안 편집 작업을 거쳐서 방송하는 것이다. 다소의 실수가 있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찍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시청자들이 알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설령 알게 된다손 치더라도 원망할 이는 없다. 그런데 무한도전의 프로듀서는 불과 20분 안에 일어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실수를 인정한다. 그 후 우리는 더욱 무한도전을 신뢰하게 되었다.

솔직한 대화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다. 만들어내는 사람과 만들어진 것의 사용자 사이의 성실하고 솔직한 대화와 그것을 통해 쌓이는 믿음은 건축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주장이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OBBA(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라는 이름의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는 두 건축가(곽상준, 이소정)가 있다. 말 그대로 경계를 넘어 소통하는 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은 주택가, 특히 빌라라 통칭되는 다세대주택들이 군집한 어느 동네에 보석 같은 건물을 하나 설계했다.

‘Beyond the Screen’이라는 이름의 그 건물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용도는 같지만 그 접근방식과 결과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형태는 흔히 그렇듯 건축법에 의한 사선제한 등의 법률적 제약에 의해 정해지며 출발했고, 1층에 근린생활 시설과 필로티주차장이, 2층에서 5층까지는 각각 그 크기와 형태가 다른 총 14가구의 주거로 구성되어 있다. 외장 재료는 지붕까지 전체가 벽돌인데, 특히 간격을 두고 비우며 쌓은 벽돌 스크린은 바깥에서 보면 멋진 문양이 되고, 내부에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에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선사한다. 또한 그 벽은 바람이 오가는 통로이자 대부분의 건물에서 흉측하게 드러나는 에어컨 실외기를 감추어 주는 실용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임대를 고려한 건물이지만 커다란 창과 중정은 입주자들에게 쾌적함과 새로운 주거 경험을 안겨 준다. 복도 없이 반층마다 두 가구씩 들어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 방식을 적용해 전용면적을 늘리고 주민들의 공용공간으로 옥상정원을 만들었다.

한국의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동네, 눈 돌리면 아무데서나 나타나는 뻔한 용도의 건축, 그리고 한정된 예산에서 새로운 건축적 해답을 찾아내고자 한 건축가는, 설계하는 기간 동안 집이 지어질 대지에 있었던 철거 예정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주변 환경과 사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도시에서 이런 형태의 건물이 주로 처하게 되는 환경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어떤 삶의 방식과 관계를 가지는지, 그리고 건축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한여름, 냉방도 안 되고 심지어 물도 안 나오는 빈 건물에서 그들은 그렇게 건축가와 건축주와 거주자가 모두 만족하는 건축을 만들어냈다.

OBBA의 건축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이처럼 과시하기보다는 교류하려 하고, 틀에 박힌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건강한 건축, 좋은 건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