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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의세금이야기] 전문가 말을 믿고 상속세 신고를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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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1 21:48:27 수정 : 2014-07-01 21: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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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은 26세 나이에 상처(喪妻)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사장의 어린 두 딸 가정교사로 들어가 15년간 사실혼 부부로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을 잘 키워 대학교를 졸업시키고 남자 사업도 번창케 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결코 갑을 평탄하게 놔두지 않았다.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그 다음날 아무런 유언도 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만 너무 허망했다. ‘살 만하니 죽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치고 돈을 갖고 저승까지 가는 사람 없고, 그렇다고 돈을 다 쓰고 간 사람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는 망인의 집안에는 대체로 재산다툼으로 인한 상속 분쟁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혼이라는 것은 혼인신고만 안 돼있지 부부로서의 생활을 똑같이 하는 경우이다. 이에 부부로서의 권리의무를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방이 부당하게 사실혼관계를 파기하면 상대방은 부당파기에 대한 위자료청구권과 재산분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법률혼과 다른 큰 차이점은 어느 일방이 죽어버리면 아무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재산상속권도 없고 재산분할청구권도 없다. 사실혼은 둘 다 살아 있을 때만 권리를 보장받기 때문에 갑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갑은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쳤는데 그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망인의 재산은 100억원이 넘었다. 갑은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죽은 남자의 사업조력자로서 사업을 번창시킨 공로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었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문제는 친척들이 그 공로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 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갑은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법에 호소하기로 했다. 위자료 및 재산분할로 50억원을 요구했다. 사실 법대로 하면 갑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제조정이 이뤄져 망인 명의로 된 35억원의 예금채권을 갑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조정조서가 작성됐다. 그리고 모든 분쟁이 정리됐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뜬금없이 갑에게 증여세가 고지됐다. 불안한 마음에 갑은 “증여세가 왜 나왔나요?”라고 세무공무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실혼 배우자는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권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돈을 줄 의무가 없음에도 예금채권을 양도해줬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갑이 황당했던 것은 아이들에게도 상속세가 추가로 고지됐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은 예금채권 35억원을 갑에게 줘도 상속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법원의 조정결정에 따라 이행해야 할 채무이기에 상속채무로 상속세 신고를 했다. 그런데 세무조사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이 안 줘도 될 돈을 줬기 때문에 채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제를 부인당한 것이다.

세금을 알려면 민법도 알아야 하고 세법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양자를 겸비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세법은 책으로 공부한다고 알아지는 게 아니다. 실무와 법리를 모두 겸비해야만 비로소 눈이 트이는 분야가 세금이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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