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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死전-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2회) 디지털시대의 화석
‘다문화’도 없고 ‘한류’도 없다.

신문을 펼치고 TV를 켜면 하루에도 여러번 보고 듣고 정부에선 주요 정책 과제로 관련 법령까지 제정한 ‘다문화’와 ‘한류’가 국어사전에는 없다. ‘몸짱, 반려동물, 블로거, 새집증후군, 셀카, 악플러, 위키백과, 이종격투기’ 등도 마찬가지다.

세계일보는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2003∼2005년)과 신문 등에서 신어 후보 50개를 뽑은 후 이를 다시 국어사전 전문가 16명에게 의뢰해 국어사전에 꼭 등재돼야 할 신어 10개를 추천받았다. 이들 신어를 취재진이 직접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과 시판 중인 10종의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으나 대부분 허사였다. 국어사전이 생명력을 잃은 결과다.

◆한류도, 다문화도 없는 사전

서점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의 뜻풀이를 찾아볼 수 있는 사전은 동아 새국어사전 딱 하나다. 하지만 이조차 ‘한국 문화의 분위기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나머지 국어사전에는 ‘온도가 비교적 낮은 해류’로 ‘한류(寒流)’만 설명하고 있다.

표준사전을 웹상에서 서비스하는 포털 네이버 국어사전 역시 한류를 검색하면 ‘한류(寒流)’, ‘한류퓨즈’, ‘혐한류(嫌韓流·한류에 대해 혐오감을 가짐)’ 등 관련 단어가 차례로 나와 있을 뿐 한류 자체에 대한 뜻풀이는 없었다. 다만 하단의 ‘단어 더보기’를 누르면 나타나는 별도 페이지에서 네티즌이 직접 뜻풀이를 올리는 ‘지식in 오픈국어’사전에 ‘한류열풍’이 소개됐다. 그나마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서비스되는 포털 다음 국어사전에선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을 비롯해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선풍적인 인기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한류를 제대로 소개했다.

반면 옥스퍼드영어사전 등 주요 영어사전은 ‘KOREAN WAVE’로 한류를 소개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국내에서 쓰이기 시작해 2006년 대통령자문위원회에서 정식 정책 명칭으로 채택된 다문화는 시중 국어사전에선 초등학생용인 보리국어사전, 연세초등사전, 다음 국어사전에서만 뜻을 찾을 수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2008년)이 제정되고 여성가족부에 다문화가족정책과, 다문화가족지원과가 존재하며 정부 부처에서 각종 다문화 정책을 쏟아내는데도 정작 국정사전인 표준사전에조차 등재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다문화’를 검색하면 ‘다노미’, ‘다누리’, ‘다문와’, ‘다문와 가족’ 등 엉뚱한 지식in 오픈국어 뜻풀이만 차례로 올라온다. 이 중 제주도 방언으로 분류된 ‘다문와’는 ‘다양한 문화의 준말∼’로 다문화를 해석했다. 

신어 등재가 제때 안 이뤄진 결과 시판 중인 사전(오른쪽)엔 ‘다문화’가 빠져 있고 국립국어원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다문화는 뜻풀이가 검색 안되고 한류는 차가운 해류로만 설명할 뿐 해외 한국문화 열풍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사전·인터넷 화면 캡쳐
◆박제된 사전

신어가 더해지지 않는 사전은 죽은 사전이다. 국어사전의 미래가 사라진 건 출판사들이 사전 편찬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을 제외한 대부분 국어사전은 2004∼2006년 마지막 개정판을 냈다. 10년 전에 만든 사전을 손대지 않고 계속 찍어내기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표준사전 역시 1998년 초판 발행 이래 종이사전 개정판을 한 번도 내지 않았고, 2008년 웹버전 개정을 마지막으로 신어 등을 비정기적으로 추가하나 한류, 다문화 등의 주요 신어조차 제대로 등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출판사 사전편찬 포기의 직간접 계기가 된 인터넷 포털 사전서비스는 종이사전 콘텐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종이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의 경우 네이버는 ‘지식in 오픈국어’를, 다음은 ‘오픈국어’등을 통해 네티즌들이 직접 올린 뜻풀이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올린 오픈국어는 ‘다문와’처럼 엉뚱한 올림말로 대체되거나, 엉터리 해석이 그대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포털 사전팀의 검증을 거치지만, 사전팀이 국어학자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되지 않아 정확한 뜻풀이를 약속하기 어렵고 소규모 인력으로 모든 오류를 잡아내기 힘든 탓이다. 이화여대 송영빈 교수(인문학부)는 “사용빈도 조사 등을 통해 신어를 등재해야 하는데 출판사나 포털 모두 사전 담당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니 반영이 안 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은 “법제화가 된 단어조차 표제어로 오르지 않은 것은 그만큼 표준사전을 비롯한 국어사전의 관리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단어의 생성과 소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그 언어는 생명력을 잃는다”고 우려했다.

특별기획취재팀=글/박성준·김수미·오현태, 편집/문효심, 사진/이제원·남정탁, 그래픽/김시은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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