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적인 짧은 정형시 ‘하이쿠(俳句)’. 17자에 촌철살인의 묘사와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르이다.
파초 잎에 듣는 빗방울 소리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바쇼(芭蕉·1634∼1694)가 본격적으로 이 장르를 일구어냈다. 짧은 만큼 해석하는 건 읽는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글로 번역해낸다면 아, 다르고 어, 다른 시어의 특성상 그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질 터이다.
류시화(본명 안재찬·58) 시인이 하이쿠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2000년 ‘한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 모음집을 펴냈다. 독자들의 반응이 컸다. 그는 이후 10여년 동안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얻어 자신의 시어로 하이쿠들을 새롭게 번역해냈다. 그 결실이 이번에 출간된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연금술사)이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그가 사랑한 하이쿠를 집대성했다.
연전에 바쇼가 집필한 하이쿠의 명작 무대 류사쿠지(立石寺)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 사찰에는 오래된 키 큰 삼나무가 하늘을 가려 숲을 이루고 있는 적막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여름 무렵 이 절에서는 수많은 매미들이 울어댄다. 바쇼는 이 절집의 숲속에서 하이쿠 하나 지었다.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매미 소리가 바위를 뚫고 스며들 만큼 배경이 적막하고 고요하다는 말인데, 단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설명해버리기에는 이 짧은 하이쿠의 여운이 깊다.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문제는 이렇게 번역된 하이쿠의 원문을 두고 읽는 사람에 따라 빛깔이 다른 언어를 다시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원문은 하나인데 이렇게도 전달이 가능한 게 시를 번역할 때의 미묘한 틈새일 것이다. ‘적막’과 ‘고요’는 본질적인 의미는 같되 받아들이는 이미지 차원에서는 많이 다르다. 적막에서는 쓸쓸함과 절대적인 고독이 느껴지지만 ‘고요’에는 그 쓸쓸함과 고독을 넘어서는 평화로움도 있다. ‘소리’라는 표현과 ‘울음’ 사이는 또 얼마나 먼 간극인가.
번역자가 명확하지 않은 앞의 ‘적막’한 하이쿠와 류시화가 이번에 발간한 ‘고요’한 하이쿠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고, 나아가 일본어를 아는 이라면 자신만의 다른 표현을 찾아낼 수도 있을 터이다. 하이쿠의 매력은 짧은 만큼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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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쿠에 매달려 10여년을 보낸 류시화 시인. 그는 “나는 시를 번역한 게 아니라 시를 살았다”고 후기에 썼다. |
산토카의 하이쿠다. 여기에 류시화는 “어떤 아름다움은 통증”이라면서 “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봄도 사람도 갑자기 떠나간다”고 해설에 썼다. 이 하이쿠를 쓴 4월 마지막 날의 일기에 다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상투적인 병 - 초조, 우울, 고뇌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적었다고 했다.
“손바닥에서/ 슬프게도 불 꺼진/ 반딧불이여”
널리 알려진 교라이(去來)의 하이쿠다. 교라이에게는 지네조(千子女)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교양 있는 집안에서 자라 하이쿠에도 뛰어난 재주 많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교라이는 그 여동생을 무척 아꼈지만 불행히도 결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 하이쿠 속 반딧불이는 그 여동생 지네조이다. 류시화는 “슬픈 일은 어떤 존재가 내 손에 앉아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꺼지는 일”이며 “그 한 가지 슬픔이 천 가지 기쁨을 사라지게 만든다”고 썼다. 지네조는 세상과 하직하면서 “쉽게 빛나고/ 또 쉽게 불 꺼지는/ 반딧불이여”라는 하이쿠를 남겼다.
이번에 류시화가 펴낸 하이쿠 모음집에는 700여편이 수록됐다. 10여년 동안 매미 소리가 바위를 뚫듯 하이쿠에 스며든 시인의 노고가 엿보인다. 류시화는 “하이쿠 읽기는 타인의 교과서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이며, 그럼으로써 하이쿠는 읽는 이에 의해 재탄생한다”면서 “반쯤 열린 문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눈의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이 하이쿠는 어떤가.
“지고 난 후/ 눈앞에 떠오르는/ 모란꽃”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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