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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화교참전용사 추모비라도 세워주오”

입력 : 2014-06-25 06:00:00 수정 : 2014-06-25 13: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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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200여명 대부분 사망
유족들 ‘최소한의 예우’ 호소
“국립서울현충원에 화교(華僑)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비 하나 세우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김육안(중국명 진위안) 여한(旅韓·재한) 화교참전동지회승계회장(한성화교협회 감사장)은 6·25전쟁 발발 64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화교참전용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억상실증을 아쉬워하며 말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화교 출신 용사들이 1973년 9월 보국포장을 받은 뒤 가족,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여한화교참전동지회승계회 제공
여한화교참전동지회 등에 따르면 1951년 1월 결성된 육군 4863부대 SC지대 등을 통해 국내 거주 화교 200여명이 6·25전쟁에 참전했다. 휴전협정 체결 후 1953년 9월 부대가 해체될 때까지 2년 반 동안 주로 조·중연합군의 주력이었던 중국군(중국인민지원군)을 상대로 첩보, 특수공작활동을 전개했다. 무장공작대원 70여명 중 휴전 후 생존한 이는 2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1사단 중국인수색대에서 활약하다 1951년 전사한 강혜림(姜惠霖·중국명 장후이린)과 휴전 후 1989년 사망한 위서방(魏緖舫·웨이쉬팡)의 유해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외국인 묘역에 안장돼 있다.

화교참전용사들은 그동안 보상은커녕 참전위령비 하나 없이 변변한 예우조차 받지 못했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도 자비로 치료했다. 전사(戰史)에 공식 기록이 없고 외국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0년대 중반 몇몇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국립서울현충원(옛 국립묘지)에 참전위령비 건립이 추진됐으나 현재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그들도 이제 모두 불귀의 객이 됐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립현충원에는 국가수호 관련 시설과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데 국가수호시설은 참전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그런데 화교는 우리나라 국적이 아니어서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추모비 설치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적군 묘지에 묻혀 있던 중국군 유해가 한·중 정부의 예우를 받으며 대륙으로 송환되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중국군유해송환 전시실이 마련된 것과는 대조적인 세태다.

김청중·김선영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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