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이의신청 업무를 5년 동안 담당해본 적이 있다. 조사관서의 과세처분에 불만이 있는 납세자가 지방국세청장에게 다시 고려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이의신청이고, 그 업무를 법무과에서 담당했다. 직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유독 기각으로만 결재를 올리는 직원도 있었다. 그들의 주된 논리는 “납세자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냥 기각해주십시오. 감사에 걸립니다”라는 거였다.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인용의견을 내 감사에 걸린다면 과장이 먼저 걸리는데 왜 감사에 신경 씁니까. 우리는 법리대로만 하면 되는데요.”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
이런 문제점을 모아 국세청을 나오기 직전 ‘부실과세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국과별로 과세처분한 사건이 조세심판원에서 얼마만큼 취소(인용)됐는지 3년 통계를 내봤다. 뜻밖에도 감사 지적분에 대한 인용률이 평균보다 더 높게 나와 회의장이 술렁인 적이 있다.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탓하기 전에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단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본능이 앞서지 사명감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니다. “인사경고를 왜 취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인사경고도 징계처분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이의를 하지 않으면 확정됩니다.” 서슬 퍼런 감사의 칼날 앞에 대들 직원은 없다. 그러니 부당하더라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 채 속으로 삭여야 한다. 그 결과는 감사에 안 걸리게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 하는 일 속에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애환이 들어있고, 내가 맡은 일을 성심껏 열심히 하면 그 사람들의 고통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지라고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멀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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