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꺼져라, 촛불이여… 인생이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
욕망의 인생, 현대인의 자화상과 오버랩
주저없이 박수를 칠 만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고전을 보라. 국립극단이 ‘2014 봄마당’의 첫 작품으로 택한 ‘맥베스’는 ‘위대한 고전의 힘’으로 객석에 벅찬 충만감을 안겨준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화려하면서도 강렬하며, 시적인 언어구사와 이미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꺼져라. 꺼져라. 명을 재촉하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한낱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 무대 위에선 뽐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할 뿐.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는 명구, 명문이 허다하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대표적이지만 ‘맥베스’에서 체념에 잠긴 주인공이 내뱉은 인생철학은 허무하다. 패배의 순간이 다가오고 아내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맥베스가 읊조리는 독백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 점철된 덧없는 시간은 마지막 순간을 향해 치닫고, 겉으로 화려해 보였던 온갖 과거의 일들이 이제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악을 자행하던 맥베스에게 ‘인생이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Life’s but a walking shadow)’에 불과하며 허망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무의미한 삶이 맥베스의 부정한 욕망과 그가 저지른 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삶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장군 맥베스는 마녀의 달콤한 예언과 아내의 부추김에 빠져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불안감 때문에 주변 인물들을 모두 죽이다 결국 자신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선과 악의 두 세계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고뇌하며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맥베스의 모습에서 수렁에 빠진 현대인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원작의 강렬함은 연출가 이병훈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손길을 만나 그 깊이를 더한다. 작품은 인물에 대한 밀착된 접근으로 매우 현대적이며 동시대적인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Fair in foul, and foul is fair)”는 대사처럼 작품 속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대립되는 모든 가치가 엉키고 전복되어 있다. 보이는 것과 내적 진실이 엄연히 다른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결한 인격을 가진 맥베스가 욕망에 빠져들어 점차 파멸로 이르게 되는 것과 반대로 욕망에 가득 차 있던 맥베스 부인은 죄책감 탓에 몽유병자가 되어 속죄한 뒤 죽어간다. 인간의 본성은 선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파괴의 열망 또한 갖고 있다. 악행을 저지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악행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사뭇 역설적이다.

“구조에 빈틈이 없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처음에 보이지 않던 비밀이 새롭게 드러나고, 사소해 보이던 대사 한마디가 종국에는 모두 연결되어 총체적 구조를 드러낸다. 더욱이 작가의 변주능력 또한 몹시 뛰어나다.” 연출가 이병훈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칭송이다. 그는 “좋은 예술이란 단순하고도 복잡한 건데, 셰익스피어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모티브를 제공하며, 그의 단순성은 핵과도 같아 터졌을 때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이자 ‘혜경궁 홍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오레스테스’ 등의 배우로 팬들에게 친근한 김소희가 위태로운 레이디, 맥베스 부인 역을 맡았다. ‘연극계에서 가장 완벽한 무대언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관념적인 언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소름 돋도록 연기하며 극의 몰입을 이끈다.

“오너라! 살인이란 흉계를 일삼는 악령들아. 내게서 여자의 마음을 없애고,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무시무시한 잔인성으로 가득 채워다오. 내 피를 탁하게 하여, 동정심의 입구와 통로를 막아다오. 나의 달콤한 젖을 쓰디쓴 담즙으로 바꾸어다오. … 어서 내게 오세요. 당신 귀에 강인한 기운을 불어넣어 드릴게요. 당신과 왕관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내 혀로 물리쳐 드릴게요.”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88-596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