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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21세기 연금술 ‘결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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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12 22:13:40 수정 : 2014-03-12 22: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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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선으로 밝혀낸 만물의 근원
신물질 창조로 인류 문명 바꿔
유네스코는 올해를 ‘세계 결정학(Crystallography)의 해’로 선포했다. 100년 전 브래그 부자의 선구적인 엑스선 회절 분석으로 촉발된 결정 구조의 이해와 조작 기술은 수많은 노벨상을 낳았고, 소재·정보기술(IT)·생의학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혁명을 이루었다.

‘결정(Crystal)’이란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고체를 일컫는 말이다. 결정은 눈, 보석, 금속, 광물 등 우리 주위의 자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400여년 전 대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눈의 육각형 결정성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했다. 많은 사람의 선망 대상인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수많은 보석도 아름답지만 희귀한 결정의 일원이다. 눈, 해빙, 빙하 등 다양한 형태의 얼음도 결정 또는 미세 결정이 합쳐진 다결정이다. 사실 자연계에는 40만종 이상의 결정이 존재하며 암석, 금속, 세라믹 등 대부분 결정이 지구 표면의 토양에 자리하거나 이로부터 추출된다.

결정학은 원자 배열을 분석하고 고체의 결정 구조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결정학 연구자는 원자와 원자 간 거리와 비슷한 짧은 파장의 엑스선을 결정에 쏜다. 여기서 결정에 의해 회절된 빔은 반복적인 구조와 대칭성에 따라 매우 선명하고도 특이한 ‘브래그 피크’의 패턴을 보여주게 된다. 이 회절 패턴을 이론적 모델과 비교해 분석하면 대상 원자의 구조를 효율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다.

결정의 연구와 응용은 지금까지 물리, 화학, 생의학 분야에서 무려 20개의 노벨상을 낳았다.

1914년 막스 폰 라우에는 결정에 의한 엑스선 회절 현상의 발견으로 이 분야에서 첫 노벨상을 탔다. 곧 이어 브래그 부자가 정교한 엑스선 회절 분석을 통해 염화나트륨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탔다. 이들의 발견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화학, 광물학, 금속학, 생의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었고 생화학, 분자생물학, 재료과학 및 공학에서 새로운 분야를 낳고 다양한 학제 간 협력을 촉진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1962년, 단백질 결정학으로 비타민 B12와 페니실린의 구조를 밝혀낸 도러시 호지킨은 1964년 각각 노벨상을 수상했다. 또한 아다 요나트 등은 리보좀의 구조를 풀어내 2009년에 노벨상을 탔다.

김승환 포스텍 교수·물리학
초기에는 한 개의 결정구조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최근 매우 강력한 엑스선을 만들어내는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거나 첨단 컴퓨터 및 프로그램을 이용해 3차원 구조의 지도를 바로 그려낼 수 있다. 현재 포항에 소재한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20여개 이상의 방사광가속기가 결정 연구에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수많은 산업기술의 진보는 바로 이러한 결정의 구조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만드는 물질의 결정 구조를 이해하면 그 원자 배열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더 강하고 가볍고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

신물질 연구의 강력한 도구로 대두한 결정학은 반도체, 저장매체, 배터리, 수소저장물질 등 현대문명의 기반이 되는 첨단 소재 및 IT 물질 개발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결정학은 예술품의 미시 분석, 화성의 토양 분석, 신약 개발의 촉매, 생명을 이루는 단위들의 이해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사실 대부분의 결정 물질들은 완전하지 않고, 규칙성을 깨뜨리는 결함이나 불순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약간의 불순물 조작으로도 다이아몬드가 연파란색을 띠는 ‘전설의 블루다이아몬드’로 탈바꿈하거나, 물질의 전자기적 성질을 변화해 반도체를 IT의 총아인 트랜지스터로 만들어낼 수 있다. ‘21세기의 연금술’인 결정학은 물질의 근원적인 원자 배열에 대한 과학기술적 진보뿐만 아니라 신물질의 보고를 크게 확장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무한의 공간에서 시각적 패러독스와 결정학적 탐구를 즐겼던 네덜란드 예술가 에스허르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결정을 사랑하는 이유는 새 물질을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김승환 포스텍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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