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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66〉 안동권씨(安東權氏)

권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 수많은 인재배출한 명문세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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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21 20:39:26      수정 : 2014-01-21 22:27:48
권씨(權氏)는

권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성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예천(醴泉)의 두 본관만 현존한다. 그중 안동권씨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예천권씨는 5000명 정도다.

일부에서는 예천권씨가 안동권씨로부터 분관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안동권씨는 김씨에서 나왔고, 예천권씨는 흔(昕)씨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안동권씨와 예천권씨는 한 뿌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성씨에서 각각 나온 것이다.

권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안동권씨는 고려 태조(왕건)에 의해 사성(賜姓)되었다. 시조는 권행(權幸)인데, 실제 성씨는 신라의 종성인 김씨였다.

그는 김선평(金宣平, 후 안동김씨 시조), 장정필(張貞弼, 인동장씨 시조) 등과 함께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진 고창현(안동현)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고려에 귀부(歸附)하자, 태조가 이들에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라는 작위를 내리고, 김행에게는 ‘능병기달권(能炳幾達權)’하다는 뜻으로 권씨 성을 하사했다.

그래서 지금도 안동에는 김선평(후 안동김씨), 권행(안동권씨 시조), 장정필(인동장씨 시조)을 ‘3 태사(三太師)’라고 하며, 이들을 모시는 ‘삼태사묘’가 있다.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묘.
이와 또 다른 권씨인 예천권씨의 시조는 흔섬(昕暹)이다. 그의 선조는 고려중엽 보승별장을 지낸 흔적신이다. 그는 안동권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의 3세손, 그리고 5세손인 흔승단(昕昇旦)도 모두 안동권씨를 아내로 맞았다.

흔씨는 예천지방의 호장을 세습하던 가문이었다. 그 후 흔적신의 6세손인 흔섬이 충목왕 때 예빈경(禮賓卿)을 역임하게 되었는데, 마침 충목왕의 이름이 ‘흔’이어서 흔씨 성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대대로 흔씨의 처가인 권씨를 새로운 성으로 정하여 권섬이라 하고 본관을 예천으로 정했다.

이렇듯 안동권씨와 예천권씨는 같은 권세 권(權)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고, 사돈지간이긴 하지만, 같은 뿌리라고 할 수는 없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예천권씨는 총 1512가구에 487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안동권씨는

고려건국에 공을 세운 안동권씨는 고려조에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권수평(權守平)은 청빈한 관리의 표상으로, 권수평의 증손인 권부(權溥)는 자신을 포함해 그의 아들 5형제와 그의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에 봉해져서 당대구봉군(當代九封君)이라는 명성을 떨쳤다. 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조선 초기 대학자로 이름이 높은 권근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활약한 권율 장군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명문세도가의 지위를 굳혔다.

안동권씨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는 성종 7년(1476년)에 발간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이다. 당시 중국 연호인 성화연간(成化年間)에 제작되어 성화보라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안동권씨 성화보.
안동권씨의 분적종 및 분파는 수중공파(守中公派), 부호공파(副戶公派),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좌윤공파(左尹公派), 별장공파(別將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중윤공파(中允公派),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대의파(大宜派), 추파(樞派), 검교공파(檢校公派) 등이 있으며, 인구는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총 19만6566가구에 62만92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안동권씨의 연혁과 인물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이다. 신라말 경애왕 때 부패와 민란으로 국운이 기울자,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입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살해하였다. 이어 견훤이 대군을 몰아 고창현(지금의 안동)을 침입하자, 김선평, 장정필 등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의 8000 대병을 물리쳤다. 이 공로로 태사의 벼슬과 권씨 성을 하사받았다.

안동권씨는 시조 이후 10세(世)를 전후하여 15파로 갈라지는데, 그중에서 추밀원부사공파, 복야공파, 그리고 인가파와 좌윤공파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추밀원부사공파의 인물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초대 문형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의 아들 권제는 세종 때 대제학으로 정인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쳤다. 이 밖에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과 임진왜란의 영웅이며 도원수(都元帥)를 지낸 권율(權慄)도 추밀원부사공파 인물이다.

복야공파는 복야공 권수홍(權守洪)의 후손들이다. 그의 증손 권한공(權漢功)이 고려 충숙왕 때 시중(侍中, 지금의 총리)을 지냈고, 그의 아들 권중화(權仲和)는 조선 태종 때 영의정에 올랐다. 우찬성(右贊成)을 지낸 권벌, 공조판서 권응수(權應銖) 등도 손꼽히는 인물이다.

부정공파는 고려시대의 부정공(副正公) 권통의(權通義)의 후손이다. 조선 문종의 국구(國舅, 장인)인 화산부원군 권전(權專)과 예조판서를 지낸 권자신(權自愼) 부자가 부정공파의 후손이다.

인가파에서는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권함이 있으며, 송시열의 제자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심인물이었던 권상하(權尙夏)가 있다. 그는 저서로 ‘한수재집(寒水齋集)’, ‘삼서집의(三書輯疑)’ 등이 있으며, 그의 아우인 권상유(權尙游)는 이조판서를 지냈다. 또 권상유의 아들인 권혁(權爀)도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權敦仁)도 인가파의 인물이다.

좌윤공파는 좌윤공 권지정(權至正)의 후손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호장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권세위(權世位)가 정용별장(精勇別將)을 지냈다. 권세위의 제6대손 권진(權軫)은 형조와 이조판서를 지내고, 세종 때 좌의정에 이르렀다. 

추원루. 안동권씨 문중의 행사와 제향을 논하는 곳.
이 밖에 권호문(權好文)은 시인으로 ‘독락팔곡(獨樂八曲)’,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등의 시가와 ‘송암집(松巖集)’을 냈다.

이렇게 고려, 조선시대 주요 문벌 중의 하나인 안동권씨에서는 조선시대 증직(贈職)된 사람을 포함하여 상신이 40명, 경신이 116명, 초시 이상이 1085명, 봉군이 70명, 호당이 6명이고 시호를 받은 인물이 59명, 공신 86명이나 된다. 또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는 모두 1398명인데, 그중 문과가 367명, 무과가 99명, 사마시가 913명, 역과가 9명, 의과가 4명, 음양과가 1명, 율과가 5명이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권수평은 고려시대에는 추밀원부사를 지내고 청빈한 관리의 표상이었다. 그의 아들 권위는 태자의 스승(태사)으로 충헌(忠憲)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증손이며 찬성사 권단의 아들인 권부(權溥)는 자신을 포함해 그의 아들 5형제와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에 봉해져, 당대 9봉군(當代九封君)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대학자로 유명한 권근(權近)이 있다. 그는 이색과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고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 우왕 때 성균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에 들어와서 사병폐지를 주장하여 왕권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예문관 대제학, 의정부 찬성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명으로 ‘동국사략’을 편찬하고, ‘입학도설’을 편찬했는데, 이는 후에 이황, 장현광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밖에 ‘양촌집’, ‘사서오경구결’ 등이 있다.

권제(權蹄)는 권근의 둘째 아들인데, 태종 때 집현전 부제학, 한성부윤을 지내고, 세종 때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를 지내고, ‘동국연대’를 편찬했다. ‘고려사’ 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정인지, 안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세종에게 바쳤다. 벼슬은 지중추원사, 우찬성에 이르렀다.

권철(權轍)은 권율의 아버지이다. 그는 명종 때 3정승을 두루 거치며, 오랫동안 권부에 있었으나, 그의 허물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권율(權慄)은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고, 육지엔 권율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다. 광주 목사로 있으면서 금산군 이산사, 수원 독왕산성에서 적을 대파하고, 행주산성에서 적의 3만 대군을 격파하는 행주대첩을 치렀다. 그 공으로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후 정유재란에서도 수많은 공을 세웠다. 

행주대첩비와 권율 장군 초상.
권상하(權尙夏)는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의 수제자이다. 송시열이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의복과 책을 유품으로 받았다. 숙종이 총애하여 우의정, 좌의정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송시열을 계승한 기호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권일신(權日身)은 실학자인 안정복(安鼎福)의 사위로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다,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승훈(李承薰)에게 영세를 받고, 명례방(明禮坊, 지금의 명동성당 부근)에서 이승훈, 정약전(丁若銓) 등과 조선천주교회를 창립하고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신해박해 때 이승훈과 함께 제주도로 귀양을 갔으나, 노모로 인해 신앙에 동요가 생겨 배교(背敎)하였다.

안동권씨 근현대 인물

안동권씨 근현대 인물로는 삼대에 걸쳐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한 권인규, 권종해, 권기수의 집안이 유명하다. 그리고 초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철학자 권상로가 있다. 그는 ‘팔만대장경’을 번역했고 ‘한국지명연혁고’와 같은 대작을 남겼다.

또 문학박사로 한국 최초의 영한사전을 펴낸 전 서울대 총장 권중휘(문학박사)씨도 유명하다. 그 외 학자로는 권이혁(전 보사부 장관, 전 서울대 총장), 권영찬(전 건국대 총장), 권오익(경제학 박사, 전 성균관대 총장), 권영대(전 서울대문리대 학장), 권영우(민송학원 이사장)씨 등이 학계의 거목이다.

정관계에서는 권승열(전 법무부 장관), 권중돈(전 국방장관, 전 국회의원), 권오병(법학박사, 전 법무·문교부 장관), 권중동(전 노동부 장관), 권숙일(전 과학기술처 장관), 권영해(전 안기부장), 권영각(전 건설부 장관), 권오기(전 통일원 장관), 권오규(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 권진호(청와대 안보보좌관), 권정달(전 민정당 사무총장), 권익현(전 민정당 전국구의원), 권일, 권병노, 권태희, 권태욱, 권복인, 권오종, 권오석, 권오훈, 권성기, 권오태, 권영우, 권오을, 권영세, 권영길, 권선택(이상 국회의원), 권용식(전 제주지사) 등이 있다.

재계 및 언론계에서는 권오기(신문편집인협회장), 권혁승(서울경제신문 사장), 권효섭(전 MBC 전무이사, 유정회 국회의원), 권용식(전 농협 회장), 권태을(아동문학가), 권덕규(국어학자, 사학자), 권구현(시인)이 있으며, 배우 권상우와 가수 보아(권보아)도 안동권씨이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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