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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겹겹이 덮고도 덜덜… 방 전체가 ‘냉동고’

입력 : 2014-01-10 19:01:14 수정 : 2014-01-11 10: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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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이틀째 강추위가 몰아친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쪽방촌을 휩쓸고 갔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집들이 칼바람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쪽방촌 전체가 냉동고나 다름없었다.

이날 취재진이 찾아간 양모(57)씨 집은 말할 때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냉기가 가득했다. 방 안의 온도는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18∼20도)를 한참 밑도는 5도에 그쳤다. 양씨는 방안에서도 내복과 양말, 겉옷, 두꺼운 점퍼로 ‘무장’하고 이불 세 겹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종이처럼 얇은 벽을 뚫고 들어오는 찬공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작은 전기장판 하나가 유일한 난방용품이었다. 그는 “겨울철엔 허리디스크가 재발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한파까지 몰아치니 남은 겨울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겨울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크게 떨어지는 한파가 잦을 것으로 예보되면서 ‘쪽방촌’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돈의동, 영등포, 창신동 등 시내 5개 쪽방촌에는 31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65세 이상 홀몸노인, 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이 85.7%(2704명)에 달한다. 여기에 강남 구룡마을 등 판자촌을 포함하면 추위에 떠는 주민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둘러본 동자동, 남대문, 구룡마을 주민들은 바깥 온도와 별반 차이가 없는 쪽방 안에서 웅크린 채 강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들어오는 냉기를 막아 보고자 공사장에서 쓰이는 부직포나 비닐, 이불을 벽면과 창문 내외부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있었다. 이마저도 부족해 옷을 입을 수 있는 대로 껴입은 채 방 안에서 취사 등 기본 생활을 해결하고 있었다. 동자동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김모(61)씨는 “그나마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는 주민들은 임시방편이라도 보온대책을 세우지만 나머지는 이불 몇 겹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중구 남대문 쪽방촌에서 만난 곽모(75)씨의 방에서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겨울철에는 취사를 방안에서 해결하다 보니 각종 음식물과 방 안 곳곳의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탓이다. 곽씨는 10년전 쪽방 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병이 더욱 악화했다. 당뇨 수치가 치솟았고, 녹내장 판정을 받아 시력도 뚝 떨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공중화장실 앞 빙판길에서 넘어져 팔과 무릎까지 다쳤다.

곽씨는 “주민 대부분이 각종 질환을 앓고 있다”며 “이곳은 건강했던 사람도 병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8도까지 떨어진 10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한 부부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방 안에 앉아 있다.
이날 오후들어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서울에는 올겨울 첫 건조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화재 위험도 높다. 강남구 구룡마을만 해도 대부분 집이 판자로 지어진 탓에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1월에는 2건의 화재가 잇따라 발생해 수십명이 삶의 터전을 잃기도 했다. 화재는 모두 집안에서 취사를 하다 불길이 번지거나 전기 누전이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지금까지 환경이 달라진 건 없다. 주민 김모(81·여)씨는 “화재 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알지만 갈 곳이 없어 머문 지 20년째”라며 “라면이나 쌀 같은 형식적인 지원 말고 영세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근본적인 환경개선이 이뤄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오영탁·이재호 기자 o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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