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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찾은 젊은 연극인 13명 “나는 배우다”

입력 : 2013-07-04 21:24:20 수정 : 2013-07-04 21: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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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운영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 2기 ‘사천의 착한 영혼’ 공연
연기력 한계· 냉혹한 현실에 방황
5개월간 강도 높은 훈련 ‘감격의 무대’
“포기할 뻔했던 연극에 대한 믿음 찾아
이젠 열심히 잘하는 일만 남았다”
“첫 공연을 끝내고 나서 ‘내가 이제 정말 배우가 된 건가’라고 제 자신에게 물으며 펑펑 울었죠. 그토록 시원하게 울어보긴 처음이었어요.”(허유미)

“그동안 정말로 그만두어야 하나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다들 그랬을 테죠.”(양한슬)

“대학로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석 달 동안 고작 10만원 받은 게 수입의 전부였어요.”(정혜선)

한국 연극의 차세대 주인공들은 그동안 차별과 무시, 생계곤란 등 설움이 컸던 만큼 ‘공식 등단’에 대한 소감을 왈칵 쏟아놓았다. 이들은 국립극단이 기획·운영하는 연극인 교육 프로그램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 2기 수료생들이다. 국립극단은 대학교육과 현장 연극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번민하는 젊은 배우들을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전문 교육과 더불어 그들이 끼를 발휘할 무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13명이 5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과 세분화된 교육을 수료한 뒤 졸업작품 격인 연극 ‘사천의 착한 영혼’(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이병훈 연출)을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로 등에서 연극을 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한계와 맞닥뜨리고 앞날에 대한 막연함을 느껴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제가 연극을 버린 게 아니라 연극이 저를 버렸다는 생각마저 했어요. 20대 때에는 연극을 ‘별’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별이 갑자기 ‘거짓말이었어’라며 이상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접어 숨겨버린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래도 여전히 연극이 인간을 위해서 남아 있는 예술 장르라는 것, 제가 저버릴 뻔했던 연극에 대한 믿음을 다시 되찾도록 해준 것이죠.”

극중 ‘부인’ 역할로 나오는 김시연씨는 “대학 재학 중에 극단에 들어가 10여년 연기 생활을 해오다 문득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며 “예술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신 선생님들을 만난 것도 천운”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셴테’와 그녀의 친척 ‘수이타’로 1인2역을 하는 정혜선씨는 한국외국어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약학대학원에 다니다 진로를 바꿔 연극계에 뛰어든 경우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왜 험난한 길을 가려느냐며 반대하던 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지만 고심 끝에 몰래 자퇴했다. 대학 3학년 교양수업 때 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결국 그녀를 무대로 이끌었다.

“한 사람의 배우가 수많은 관객을 압도하는 것에 전율했어요. 그 이후로 무대와 배우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투신한 연극판은 그녀에게 꿈이나 낭만을 안겨주기보다는 냉혹한 현실로 맞아주었다. 관련 학과 출신 중심의 극단이나 모임 시스템은 정식 캐스팅의 기회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단역이나 탈을 쓰고 나오는 아동극만 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3년을 보냈다. 출연료를 못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굳건히 참고 기다리던 정씨는 마침내 이번 프로그램과 연을 맺고 주연배우로서 당당히 공식 데뷔했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아빠랑 엄마가 첫 공연을 보셨다는 거예요. 이제 정말 열심히 잘하는 일만 남은 거잖아요. 하하.”

‘리치부인’ 역의 허유미씨는 연극무대의 조명 스태프 출신이다. 그간 일곱 작품의 조명을 담당했다. 호주 멜버른의 모나시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그녀는 2009년 귀국 후 영어학원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근로자연극제에 참가하면서 조명을 배웠다. 원래 배우의 꿈을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이왕 늦게 시작했으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연극에 관련된 일을 모두 배우며 기회를 잡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무대를 비추었다. 그러나 자꾸만 ‘무대 위에 선 내 모습’이 떠올라 힘겨웠다. 상대적 굴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두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연기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마임을 배우고, 무대 위에서 ‘몸 쓰는 법’을 부지런히 익혔다. 그녀는 이번 프로그램의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도 아침 일찍 나와 뜻 맞는 친구와 함께 교재를 복습하며 ‘연극 놀이’에 몰두했다. 연습은 무대 울렁증을 없애준다.

“저 보고 겁이 없대요. 긴장하다가도 막이 오르면 어느새 극을 즐기며 연기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죠.”

지난해 세종대 영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곧장 연기를 시작한 양한슬씨에게 왜 연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연기를 하다 보면 나를 많이 깎아야 하고 구겨놓기도 하며 파괴해야만 하잖아요. 제 가슴속 깊은 곳의 본성을 끄집어내거나 숨기면서 그것들과 싸우고 이겨 가다 보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도 들려준다.

“무대는 다함께 꾸미는 거예요. 제 에너지가 동료에게 도움이 되어 시너지효과를 유발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함께 연기해본 사람들이 ‘아 이 사람과는 또다시 공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배우요.”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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