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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48> 조(趙)씨와 한양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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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01 00:09:45 수정 : 2013-05-01 0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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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개 본관 중 20본만 현존… 조선 건국 공로로 세도가 반열 조(趙)씨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조씨 성에는 나라조(趙)와 성조(曺)를 쓰는 두 개의 성씨가 있다. 이 두 개의 성씨 인구를 모두 합치면 135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중 성조(曺)를 쓰고 있는 인구가 36만명 정도이고, 나라조(趙)를 쓰고 있는 인구는 98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2000년 통계청 발표)

따라서 우리나라 조씨의 주축은 나라조(趙)를 쓰는 성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풍양조씨를 제외하면 조(趙)씨를 쓰는 대부분의 본관은 토착성씨가 아니며, 중국에서 건너온 시조를 모시고 있다.

조씨는 조선조에서 세도가문으로 손꼽히는 집안이다. 문헌에는 본관이 200여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현존하는 본관은 풍양(豊壤)·한양(漢陽)·양주(楊州)·임천(林川)·배천(白川)·함안(咸安)·순창(淳昌)·횡성(橫城)·평양(平壤)·김제(金堤)·직산(稷山)·옥천(沃川) 등 20본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있는 충무공 조영무의 묘.
그런데 다른 성씨와 달리 조씨는 본관별로 시조와 유래가 다르다. 따라서 다른 성씨처럼 분적된 본관이 없어 동원, 동근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 현종 때까지 동성이본도 통혼을 금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본관별 유래를 살펴보면, 풍양조씨의 시조 조맹(趙孟)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양주·평양·임천·배천 등은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주조씨의 세보(世譜)에 의하면 중국 송나라 태조인 조광윤(趙匡胤)의 7세손에 조익(趙翼)·조기(趙冀)·조이(趙裏)·조광(趙廣)의 4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셋째인 조이와 넷째인 조광이 고려에 귀화하여 각각 평양조씨와 임천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한양조씨 대종회의 조지수 영정 봉안식 장면. 한양조씨 대종회에서는 2007년 시조인 중서공 조지수 영정을 확정하고, 충남 홍성에서 영정봉안식을 거행했다.
또 첫째 조익(趙翼)의 4형제 아들인 조지린(趙之璘)·조지수(趙之壽)·조지청(趙之淸)·조지말(趙之末)이 고려 의종 때 고려에 건너와 각각 배천·한양·풍양·양주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에는 배천조씨가 송 태조의 장자(長子)의 후예이며, 임천조씨는 차자(次子)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또 일설에는 배천조씨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趙子龍)의 후예라는 주장도 있다. 평양조씨의 시조 조춘(趙椿)은 남송의 상장군(上將軍)이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풍양·한양조씨 측에서는 양주세보의 기록을 부인하고 있다. 풍양조씨에서는 시조 조맹은 본래 성이 없었고 이름을 ‘바우’라 하였는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움으로써 조씨 성을 하사받고 이름도 맹(孟)으로 고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함안조씨의 시조인 조정(趙鼎)도 중국 당나라의 절강(浙江) 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동생 조부(趙釜)·조당(趙?)과 함께 귀화한 뒤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움으로써 개국벽상일등공신(開國壁上一等功臣)에 녹훈되고 대장군을 지내 그 후손들이 함안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조씨의 선계는 동일하지 않다. 또 풍양조씨를 제외한 대부분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조씨가 조선시대 세도가의 반열에 오르고, 명문가로 손꼽히게 된 데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40여명 가운데 조씨가 8명으로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02명을 배출했으며, 상신에 19명, 문형(양관대제학)에 10명, 왕비 3명, 청백리 6명과 판서급 수십 명을 배출하였다.

한양조씨(漢陽趙氏)는

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신종·희종·강종 등 4대에 걸쳐 조순대부(朝順大夫)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이다. 그는 덕원부(지금의 원산)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을 뿐 선계는 고증되지 않고 있다(일설에는 그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한양조씨가 한양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그 후손이 한성으로 옮겨와 살며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기 때문이다.

한양조씨 시조 중서공 조지수 영정.
한양조씨의 번창은 이성계와의 인연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한 덕택이다. 조지수의 후손들이 자리를 잡은 덕원부는 지금의 원산으로, 고려시대에는 쌍성총관부(함흥·원산)가 있었던 곳이다. 시조 조지수와 그 후손이 이곳에서 주요 문벌로 성장하고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한양조씨 집안이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성계와 한양조씨 집안의 관계는 이성계의 할아버지인 춘의 후부인(이성계 아버지 이자춘의 계모)으로 조지수의 손자인 조양기(趙良琪)의 딸이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성계의 집안은 고조부 이안사(李安社)가 간도로 들어가 원나라의 지방관이 되면서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이안사의 증손자인 이자춘(李子春)까지 4대에 걸쳐 원의 벼슬을 하였다.

이자춘도 천호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원에서 고려 출신 이주민들에 대해 차별정책을 실시하자, 원에서 등을 돌려 고려를 돕기로 결심하고, 조양기의 아들인 용성부원군 조돈(趙暾)·조인벽(趙仁璧) 부자와 합세하여 쌍성총관부를 회복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자춘은 동북면병마사가 되고(이성계가 계승), 조돈 부자는 예빈경과 태복경이 되었다. 그리고 조인벽의 첫 번째 부인이 죽자 이성계의 누이(이자춘의 딸, 정화공주)가 조인벽의 아내가 되었다.

이렇게 한양조씨는 조선조와 뿌리 깊은 인연 덕택에서 조선시대 크게 번창했다. 그 결과 본관별 성씨에서 문묘 배향 1위, 종묘 배향 2위, 봉군 16위, 부조묘 7위, 시전 15위, 체식 21위, 청백리 2위, 문과 급제자 90여명을 배출하였다.

한양조씨는 세계를 이어오면서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안정공파(安靖公派)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월계당파(月溪堂派) 백당공파(栢堂公派) 세마공파(洗馬公派) 봉사공파(奉事公派) 첨추공파(僉樞公派) 한풍군파(漢豊君派) 도제공파(都制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고사공파(庫使公派) 총제공파(摠制公派) 돈녕공파(敦寧公派) 공안공파(恭安公派) 병참공파(兵參公派) 현령공파(縣令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파서공파(坡西公派) 봉례공파(奉禮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호의공파(戶議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등이 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한양조씨는 9만5206가구에 총 30만774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양조씨의 연혁과 인물

한양조씨의 시조 조지수는 고려 명종∼강종까지 4대에 걸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다. 두 아들 중 첫째는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조인재(趙麟才)이고, 둘째는 쌍성총관(雙城摠管)을 지낸 조휘(趙暉)이다. 또 조인재의 손자 조세진(趙世珍)은 예의판서(禮義判書)를 지내고 한산백(漢山伯)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조영무(趙英茂)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정승을 지내고, 태종묘(太宗廟)에 배향되었다(일부에서는 조인재·조세진·조영무를 한양조씨로 종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쌍성총관을 지낸 조휘의 아들 조양기는 총관 겸 부원수를 지냈으며, 손자인 조돈은 아들 조인벽과 함께 홍건적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조인벽은 사도도지휘사(四道都指揮使)와 삼사좌사(三司左使)를 지냈고, 둘째인 조인경(趙仁瓊)은 검찬성을 지냈고, 셋째인 조인규(趙仁珪)는 검한성을 지냈다. 또 넷째인 조인옥(趙仁沃)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내고 태조묘에 배향되었다. 또 조선 개국공신인 조온(趙溫)은 찬성사를, 좌명공신인 조연(趙涓)은 우의정을, 조사(趙師)는 첨지중추원사를 지냈다. 

전남 화순에 있는 조광조 적려유허비각. 정암 조광조는 용인에서 태어났으며, 유배지인 전남 화순에서 사사되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양조씨 일문에게 큰 화가 닥친 것은 단종복위 사건과 연결된 계유정난이었다. 이때 조영무의 집안은 손자 조완규(趙完珪)과 조완주(趙完珠) 형제를 비롯하여 한 집안에서만 여섯 명이 화를 입었다. 이로 인해 두 형제의 부인과 딸은 신숙주의 노비가 되었다가 자진하여 죽고, 조종경(趙宗敬)·조이경(趙以敬)과 조인옥의 손자인 조순생(趙順生)과 그 아들, 손자들도 세조로부터 크게 화를 입었다.

이러한 한양조씨 일문에 미친 화는 조온의 손자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기묘사화에서 또 한 번 불어닥쳤다. 정암 조광조는 14세 때 유배 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으며,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중종 때 사마시 장원하고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헌·동지성균관사를 역임하였다. 유교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며 왕도정치를 역설한 그는 향촌의 상부상조를 위하여 여씨향약(呂氏鄕約)을 팔도에 실시하고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하였다. 또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하여 소장학자를 요직에 안배하고,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의 위훈 삭제를 주장하여 공신들의 4분의 3인 76명의 훈작을 삭탈하였다.

이에 훈구파인 홍경주·남곤·심정 등이 경빈(敬嬪)박씨 등 후궁들을 움직여 무고하자 중종은 이들을 파직·투옥·유배시켰다. 이에 따라 조광조의 개혁정치 꿈은 꺾인 채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이를 기묘사화라 한다. 그 후 선조 때 복권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율곡 이이는 조광조를 가리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과 함께 ‘동방사현(東方四賢)’이라고 지칭하였다.

조선조 사림파의 영수인 정암 조광조의 초상.
그 외에도 한양조씨 문중에서는 청백리에 녹선되고, 연산군의 사초열람을 막아 유배를 당한 조원기(趙元紀)가 있다. 그는 조광조의 숙부로 문과 급제 후 사간원 정언(正言) 등을 거쳐 형조판서와 의정부 좌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문과 장원, 호당, 문형, 청백리, 문간의 영예를 한 몸에 얻은 조경(趙絅)이 있다. 그는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도승지·대사헌·대제학·형조판서·예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을 역임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창하여 유배되었다.

또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와 쌍벽을 이루는 백기당(白旗堂) 조웅(趙熊) 장군이 있으며, 자린고비 전설로 유명한 자인고(慈仁考) 조륵도 있다.

한양조씨의 근현대 인물

한양조씨 문중에서 근현대 인물로 유명한 사람은 유석 조병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충정공파 24세손으로 천안에서 출생했다.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의거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각각 3년,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미군정청 경무부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과 3대 민의원을 거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선거 직전에 사망하였다.

그 외에도 근현대 인물로는 대한독립단장을 한 조맹선(趙孟善), 독립군 총참모였던 조영원(趙永元),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조지훈(趙芝薰), 그리고 조병화(趙炳華) 시인도 있다.

그 외 한양조씨의 근현대인물로는 정관계에서 조종승(국회의원, 6·25전쟁 때 납북), 조진만(대법원장), 조병일(법무부 장관), 조시형(농림부 장관, 국회의원), 조윤형·조순형 형제(국회의원, 조병옥의 아들), 조병봉(무임소장관, 국회의원), 조찬형(국회의원), 조종석(치안본부장, 국회의원), 조일문(국회의원), 조종익(국회의원), 조종호(국회의원) 등이 있으며, 학계에서는 조광하(성균관대 총장), 조근영(성균관대 재단이사장), 조기준(고려대 교수), 조병하(경북대 교수), 조홍식(성균관대 교수), 조병학(의학박사) 등이 있고, 재계에서는 조경서(전 대한생명보험 사장), 조병준(전 쌍용양회 회장), 조봉구(동광기업 사장), 조상원(현암사 사장) 등이 있다. 영화배우인 조인성도 한양조씨로 알려져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ksh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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