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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신안 신의도 토판염 장인 박성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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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1-08 10:17:09 수정 : 2013-01-08 1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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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람 손이 많이 가도 소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
혹한의 염전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차가운 갯바람이 세찬 허허벌판이다. 지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함박눈 같은 소금꽃을 피워냈었나 싶을 정도다. 소금장인 박성춘(51)씨는 가슴으로 파고드는 냉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소금밭으로 향한다. 목포에서도 배로 2시간 걸리는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서 갯벌을 다져 만든 토판 위에 소금 농사를 짓는 그는 가을철이면 뻘밭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함초를 겨울이면 갈아엎고 토판 조성 작업을 한다. 갖가지 미네랄이 풍부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함초와 역시 유익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 갯벌의 성분이 소금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다.

박성춘씨가 황토 블록으로 바닥을 깐 염전 위에 서 있다. 그는 토판의 차선책으로 황토 블록 바닥재를 실험하고 있다.
게다가 신의도가 속해 있는 신안 일대는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깨끗하고 영양 풍부한 바닷물이 가장 먼저 도달해 내려앉는 비옥한 갯벌을 가지고 있다. 천혜의 소금밭이다.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판염은 유기물과 미네랄이 풍부해 짠맛조차 부드러워져 그 뒷맛이 달짝지근하기까지 하다.

자연이 허락하는 가장 건강하고 맛있는 소금을 얻기 위해 그는 남들보다 한 달 늦은 5월에 농사를 시작해 남들보다 한 달 이른 추석을 전후해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다. 습기를 가진 남풍이 부는 시기에 생산된 소금이 가장 질이 좋기 때문이다. 옻칠을 말릴 때 적당한 습기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토판 위에 소금농사를 지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일이 까다로워 남의 손도 쉽게 빌릴 수가 없다. 일반 염전에 비해 일은 몇 곱절 고되면서도 수확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그래도 그는 토판염만 고집한다.

“자연은 그 순리를 따를 때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내주지요. 제 아무리 사람 손이 많이 가도 소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금이 오는 길을 터줄 뿐이지요.” 

창고에 쌓인 소금을 살펴보고 있는 소금장인 박성춘씨.
토판염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어낸 하나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햇살과 바람을 먹고 자란 소금을 거두어들일 때에도 갯벌이 달라붙지 않도록 갓난아기 다루듯 섬세한 손길이 요구된다. 우윳빛 감도는 소금은 그렇게 얻어진다. 햇빛과 바람, 정성이 어우러진 결정체다.

예로부터 소금이 좋아하는 날씨는 소금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좋은 소금을 얻으려면 태양과 바람이 열심히 일할 때 사람도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한다. 사람의 욕심이나 편의에 맞춰서는 결코 좋은 소금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천일염이 백색의 아주 짠 정제염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집에서 담그는 조선간장마저 사라지면서 천일염의 감칠맛은 화학 조미료가 대신했다. 콩나물국이나 달걀찜 같이 소금 간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의 맛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웰빙 바람으로 천일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소금 농사꾼 박성춘이 염전 일에 빠져든 것은 ‘아픔’이 계기가 됐다. 염전 일을 하던 큰형님이 경운기 사고로 갑자기 숨지자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잊으려고 한동안 갯벌을 헤매기도 하고, 갯낚시로 시간을 보냈지만 허한 가슴을 채울 수가 없었다.

“형님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지요. 결국엔 제가 형님의 화신이 되는 길밖에 없었지요.”

그는 목포에서 과일·채소 장사를 접고 염전 일에 뛰어들었다. 부모님과 아내의 반대로 처음엔 고향에 오두막을 짓고 한동안 목포와 섬을 오갔다. 하지만 염전 일은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웠다. 장사로 번 돈도 다 날려야 했다.

“목돈을 다 쏟아부었으니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마음이 절로 끌린 보육원, 음성꽃동네 등의 자원봉사가 위안이 됐어요. 활동 중에 만난 거동 불편한 장애 독거노인이 ‘걸어다닐 수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게 해 주었지요.”

그는 2007년 나폴리 세계소금박람회에 참여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세계적 명품이라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의 맛을 본 뒤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토판염이 게랑드 소금보다 염도는 낮고 맛은 더 좋았어요. 미네랄이 풍부한 토판염이면 승산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는 염전 바닥에 까만 장판을 깔아 생산하는 ‘장판염’을 포기했다. 고품질에 걸맞은 고가품으로 방향을 틀었다. 장판염에 비해 토판염이 열 배 이상 비싸다. 현재 전국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의 1%만이 토판염이다.

명품 소금에 대한 집념은 ‘날개 달린 바람꽃 소금’으로까지 진전됐다. 뙤약볕과 남풍이 부는 날, 토판 염전 물 위에 소금 결정이 둥둥 떠오른다. 소금 결정 옆으로 잠자리 날개 같은 결정들이 생겨 소금이 일시적으로 물 위에 뜨는 것이다. 이때 체로 떠낸 것이 최고급 ‘날개 달린 바람꽃 소금’이다. 깔끔하고 감칠맛이 더 하다.

그는 염전 환경도 매우 중시한다. 염전 도로는 먼지가 날리지 않게 자갈을 깔았다. 아무곳에서나 용무를 보지 못하게 위생적인 화장실도 따로 갖췄다. 바닷물은 호스로 직접 끌어온다. 비 올 때 소금물을 보관해 두는 시설의 슬레이트 지붕도 다른 재질로 바꿨다. 암 유발물질인 석면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섬 전체를 원시 자연의 청정지역으로 가꾸는 것을 꿈꾸고 있다. “섬의 모든 환경오염 요소를 다 없애 나가야 합니다. 청정자연이 자본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농약을 쓸 수밖에 없는 논농사와 항생제 등 각종 약제를 사용해야 하는 양식장 등을 점차 염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1800명에 달하는 섬 주민도 한 곳으로 이주시켜 오폐수 처리 등을 일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염전에서 돌아 온 그가 소금창고로 들어섰다. 지난 여름에 수확한 소금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1년 정도 창고에서 숙성시키면 자연스럽게 간수가 빠져나갑니다. 소금이 공기를 빨아들였다 뱉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지요. 소금이 호흡하는 것입니다. 도시처럼 공기가 나쁜 곳에서 소금을 숙성시키면 주변의 유해물질을 되레 흡수하게 됩니다. 유해한 소금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는 소비자들에게 청정지역의 염전에서 숙성된 소금을 권한다. 주문받은 소금을 소량으로 포장하는 그의 손길이 다시 분주하다. 아들과 아내도 손을 보탠다. 철학자 몽테뉴는 “어느 시대든 순수한 자연스러움과 진실에는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소금장인 박성춘씨도 그걸 믿는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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