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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차맥] 〈45〉 조선의 선비 차인들 ④ 한재 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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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24 20:26:34 수정 : 2012-09-24 2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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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다도경전 ‘다부’ 남기고 차공을 도의 경지로 격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다경(茶經)인 한재(寒齋) 이목(李穆·1471∼1498)의 ‘다부(茶賦)’를 발견한 사람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류승국 박사다. 1980년쯤이다. 이 책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국 근세 차사의 중심은 조선 후기에 머물렀다.

“내 마음속에 이미 차가 있거늘 어찌 다른 곳에서 또 이를 구하려 하겠는가(是亦吾心之茶又何必求乎彼耶).”

이 구절은 한재 이목이 차에 관해 말한 선문답 같은 ‘오심지차(五心之茶·내 마음의 차)의 구절이다.

차인들이 한재 이목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6년 세운 한재다정(寒齋茶亭)에서는 수시로 차를 올리는 차인들을 볼 수 있다.
‘차의 세계’ 제공
류 박사는 “다부에는 육우의 다경보다도 더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한재 이목 선생은 무오사화 때 28세의 젊은 나이로 참혹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사상은 그 다부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목 선생의 다부다송(茶頌)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내 마음속에 이미 차가 있거늘 어찌 다른 곳에서 또 이를 구하려 하겠는가(是亦吾心之茶又何必求乎彼耶)’라 하여 실재(實在)의 차에서 오심(吾心)의 차로 승화한 경지는 한국인의 사고양식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류 박사는 부연설명에서 “실재의 차를 가지고 오심의 차로 승화한 한국인 사고양식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한재 ‘다부’의 특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바로 차도(茶道)에 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차의 차공(茶供)을 도(道)의 경지로 격상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차(茶)학자 정영선씨는 ‘다부’ 편역 첫머리에서 “8세기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 ‘세계 최초의 차 경전’이라면, 한재의 ‘다부’는 ‘세계 최초의 다도(茶道) 경전’”이라고 말한다.

육우의 ‘다경’에 비해 다부가 더 철학적이라는 뜻이다. 이는 주자학이 한국에서 더 철학적(형이상학적)으로 발전한 것에 비할 수 있다. 아무튼 조선의 15세기 전후는 한국에서 철학이 꽃피우던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그 조짐을 점필재나 한재에서 보게 된다.

한재 이목은 성종에서 연산군 사이에 살았던 문인으로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로 성균관에 들어갔고, 24세에 대과장원으로 급제하여 영안도평사(永安道評事)를 지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무오사화 때 훈구파인 윤필상의 모함을 받아 김일손과 함께 참형에 처해졌다.

그가 참형되기 전에 ‘다부’를 써놓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한국차사의 큰 보배이며 자존심인 ‘다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뻔했다. 김종직의 제자 20여명 가운데 차시를 남긴 차 마니아들도 10여명이나 되지만 이 중 한재가 으뜸이다. 그가 남긴 시 구절을 보자.

“우리 집안 예부터 글과 학문을 좋아해/ 책을 즐겨하고 돈에는 관심이 없었네./ 부모님은 이미 늙으셨지만/ 자식들은 아직 서생이라네./ 학은 바위 근처 노송에서 꿈을 꾸고/ 달빛 아래 마을에선 차 연기 피어나네./ 도를 구함에는 한결같고/ 산봉우리 구름에 한눈팔지 마라.”

한재의 ‘다부’가 쓰인 연대는 대체로 그가 장인어른을 따라 연경을 다녀온 뒤인 1495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시문을 모은 ‘이평사집(李評事集)’(권1)에 수록되어 있다. 

초의 의순(意恂·1786∼1866)이 ‘동다송’(東茶頌)을 쓴 연대는 1837년이다. 그러면 한재가 죽기 직전에 다부를 썼다고 해도 약 340년 차이가 난다. 또 이덕리의 ‘기다(記茶)’보다 300여 년 빠르다.

더욱이 중국의 다성 육우 이후에 중국과 한국, 일본의 다서 대부분이 ‘다경’이나 ‘대관다론’ 등 기존의 다서들을 참고로 한 데 비해, ‘다부’는 명칭이나 시구(詩句)·산지(産地) 등의 일반적인 내용을 인용한 것을 제하면 독창성이 가장 높은 저술이다. 중국 진나라 두육(杜育)의 ‘천부(舛賦)’라든지 당나라 고황(顧況)의 ‘다부’, 송나라 오숙(吳淑)의 ‘다부’와 비교할 때도 단연 으뜸이다.

한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차사를 엮는 것과 초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동아시아 차의 비교문화론에서 엄청난 위세의 차이를 가져온다. 굳이 한국의 차를 논하면서 조선후기 다산-초의-추사로 내려오면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한재의 ‘다부’는 내용의 양과 차 정신에서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경지로 올라간 것이다. 특히 한재의 다사적 위치를 매월당-점필재-한재에 이르는 선으로 보면 그의 다도의 정신인 중(中)과 허(虛)는 초의가 후대에 표방한 중정(中正)보다 더 풍류도의 전통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재는 왜 그의 호를 찰 ‘한(寒)’ 자를 썼을까. ‘한’ 자는 청담학파의 차도 용어라고 할 수 있는 청(淸)·초(草)·한(寒)·도(道)의 연장선상에 있다. 목은 이색은 유불도가 현묘(玄妙)한 경지를 ‘지도(至道)’라고 하였다. 결국 한재의 오심지차(吾心之茶)는 ‘지도’를 계승한 풍류차도인 셈이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산 76-1번지에 있는 한재 이목 선생의 묘소.
‘차의 세계’ 제공
한재는 사후 200년이 지난 숙종 44년(1718년) 김창집이 추천하여 ‘정간(貞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호는 “숨어서 굴하지 않음이 정(貞)이요, 정직하고 무사함이 간(簡)이다”(不隱無屈曰貞, 正直無邪曰簡)의 뜻을 따온 것이다. 흔히 시(詩)의 정신을 ‘사무사(思無邪)’라고 하는데 차의 정신도 ‘무사(無邪)’이다. 결국 시든 차든 결국 검박(儉朴)과 무사(無邪)가 최고이다.

매월당의 정신을 잇는 점필재에서 한국적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도학(道學)과 다도(茶道)의 일체인 다도일여(茶道一如)·다심일체(茶心一體)는 제자인 한재 이목에게서 집대성된다. 한재에게는 차는 구도를 위한 공부였으며, 그가 혼자 마시는 독철차(獨茶)는 일종의 유가의 최고 경지인 신독재(愼獨齋)의 음료였다. 그의 오심지차(吾心之茶)는 다심일체(茶心一體)를 이룬다.

한재는 특히 중용과 주역을 좋아했다. 이는 그가 주자학은 물론 유학의 핵심에 이른 인물임을 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재는 ‘천도책(天道策)’에서 “‘하늘과 사람은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는 천인무간(天人無間)이라고 표현하였다.” ‘천인무간’은 목은 이색(李穡)도 강조한 내용이다. 이는 연구에 따라서는 조선후기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의 뿌리가 될 수도 있다.

“옛 사람의 말에, 하늘에 ‘實’(誠實)로써 응하면 하늘이 ‘문(文)’으로 도와주고, 역으로 실(實)로써 응하지 않으면 하늘이 재앙을 주나니, 만고(萬古)를 통찰하여 보건대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 청컨대 ‘천인무간(天人無間)’으로 엮어 삶의 마지막을 바치고자 합니다.”

한재는 이어 ‘중용(中庸)’의 글귀인 “성(誠)은 하늘이요, 성(誠)을 실천하는 자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늘과 사람의 성(性)은 하나이다(誠者天也, 誠之者人也, 卽 天人之性一也)”를 들어 하늘과 사람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천인무간’에서 ‘성(誠)’을 통해 ‘중(中)’을 얻으면 실로 존재의 궁극에 이를 수 있음을 일찍이 터득하였음을 비치고 있다. 이때의 중(中)은 고정된 중간(中間)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미묘한 ‘중’이다. 흔히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사이에서 가까스로 잡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의 것이다.

한재는 이에 더하여 노장의 ‘허(虛)’ 사상을 다부에 첨부한다. 자신의 차 철학 정수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용의주도하게 ‘허실생백부(虛室生白賦)’를 붙인 것이 그것이다. 이는 ‘다부’의 편집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재는 유가이면서도 동시에 선가(仙家) 혹은 도가(道家)를 병행하고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허실생백(虛室生白)’은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구절로서 공자와 수제자 안회 사이의 문답을 통해 유가를 풍자한 대목이다. “저 빈 곳을 보면 마음(虛室)이 저절로 환해지니 길상이 머물고 머문다(瞻彼者 虛室生白 吉祥止止)”는 뜻이다.

마음은 욕심과 소유로 채워져 있기도 하고 비어있기도 하다. 이러한 마음의 특성을 두고 공자와 안회의 문답을 통해 장자는 심재(心齋)를 풍자하고 있다. 도(道)와 도둑 도(盜)의 차이는 소유에서 판가름난다. 아무리 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소유에 빠지면 도둑이 되고 만다.

장자의 ‘허실생백’은 흔히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구절은 유가와 도가가 만나는 교집합의 부분이기도 하다. 한재의 차 철학은 주자학과 노장학의 융합이고, 통섭이다.

‘허실생백부’는 한재집의 ‘다부’ 바로 뒤에 나온다. 다시 말하면 ‘다부’의 철학은 ‘중(中)’과 ‘허(虛)’인 셈이다. 한재는 그의 차 정신의 형이상학적 완성을 위해서 ‘다부’와 함께 ‘허실생백부’를 나란히 썼던 셈이다. 이는 유불선 풍류차도의 완성을 위한 찬란한 노래인 것이다. 한재의 인물됨은 아직 국내 유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않았지만, 주자학에 충실하면 도리어 주자학이 이단으로 몰았던 양명학(陽明學)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한재(1471∼1498)와 왕양명(王陽明·1472∼1592)은 그 생몰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한재는 양명학과 같은 별도의 이름은 쓰지는 않았지만 같은 내용을 왕양명과 거의 동시에 실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재는 ‘차의 도학(道學)’인 ‘다도(茶道)’에 도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젊은 나이에 한재의 이 같은 성취에는 스승인 점필재의 영향이 컸음은 물론이다.

한재 이목의 차도에는 다분히 노장 사상이 스며있다. 이는 중국의 노장사상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고대 신선 사상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신선사상은 흔히 중국의 노장(老莊)이 먼저인 것처럼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학문적 토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황제(黃帝)가 동이(東夷) 땅에서 신선술(神仙術)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고,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도 역시 황제가 청구(靑丘) 땅에서 자부(紫府) 선생으로부터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고 전한다. 중국 도교의 연원으로 보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도 신선설(神仙說)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참 후대인 ‘장자(莊子)’에 이르러 신선이 언급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 한국의 선도가 중국에서 종교화되면서 도교로 되고 이 도교가 다시 한국으로 역류한 성격이 강하다. 한편 한국의 도교도 동명왕(東明王)이 창설했음을 문헌이 전한다.”

선가(仙家·仙道)는 후대에 도교(道敎)로 종교화되었지만 ‘도(道)’는 ‘교(敎)’보다는 동아시아 사상에서는 한 수 위인 상위의 개념이다. 도(道)는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도달하여야 하는 덕목이다. 이는 ‘중용(中庸)’ ‘제 1장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고, 성을 따르는 것이 도고, 도를 닦는 것이 교이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에서 교(敎)란 도(道)를 닦는 것이다.

한국에는 고대에서부터 자연을 숭배하는(인위를 싫어하는)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는 유불선을 받치는 그릇으로서의 풍류선(風流仙)이 있는 것이다. 풍류선에서 풍류차가 나온다. 그 풍류차가 바로 조선의 초중기라는 역사적 시점에 이르러 초암차로 드러난 셈이다.

풍류차의 전통은 그의 스승인 김종직은 물론이고, 그 위로 매월당, 그리고 여말선초의 목은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등 기라성 같은 이름난 선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든 불교든 우리의 전통은 선교(仙敎)을 바탕으로 현묘지도(玄妙之道)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 사상사의 맥락 위에 한재 이목이 우뚝 서 있다.

한재 묘소와 사당에서는 해마다 한재 이목 선생의 기일인 음력 칠월 스무엿새(7월 26일)날에 전국 차인들이 모여 헌다례(獻茶澧)를 올린다. 이에 앞서 한재 사당(경기도지방기념물 47호)에 있는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든다. 2008년 8월 한재이목선생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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