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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 <57> 미셸 푸코를 기억하라!

광기·권력·性 사유공간으로 불러내 새롭게 재해석
기존 가치·질서에 대한 반기
담론화로 지식계에 논쟁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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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7-01 20:44:15      수정 : 2012-07-01 20:44:15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0.15.∼1984.6.25.)가 사유하는 영역은 철학과 의학에 걸쳐져 있다. 푸코의 사유는 권력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 광기에 대한 그의 도저한 관심으로 나뉜다. 광기는 역사에서 배제하고 이성에 의해 지워진 것에 속한다. 서양 역사에서 미치광이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가두기 시작한 것은 17, 18세기 무렵이다. 인간적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광기는 근대적인 의미의 가족과 국가가 탄생하면서부터 “환한 대낮”에서 추방되어 수용소에 보내 고립시키고, 이성과 도덕규범,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 속”에 묻어 격리시켜버린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 사회는 정신병자·기형인·부랑자·실업자·거지·빈민들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가두는 대감금의 시대가 열린다. 그 까닭은 이들이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표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한때 인간적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광기는 근대 이후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 속에 묻어 격리된다. 광기는 더 이상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성의 번뜩임이 아니라 그저 치료해야만 하는 병리학적 징후에 지나지 않게 됐다. 그림은 뭉크의 ‘절규’.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친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들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나온 익숙한 존재들이라고 이해되었다. 아울러 광기는 더 이상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성의 번뜩임이 아니라 그저 치료해야만 하는 병리학적 징후이고, 사회가 정해놓은 어떤 표준에서 벗어난 비표준적 개체라는 징표에 지나지 않았다. 푸코는 이것들을 다시 사유의 공간으로 끌어내 고고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 2002)은 1954년에 나온 푸코의 첫 책이다. 푸코는 이 책을 통해 과연 심리학이 정신병을 제압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한다. 먼저 결론을 말하자면 심리학은 인간 내면에서 섬광과 같이 터져나오는 광기를 제압할 수가 없다. 심리학은 광기의 발작으로 생이 찢겨나간 네르발에게도, 아르토에게도, 니체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될 수가 없었다. 이어진 ‘광기의 역사’(인간사랑, 1991), ‘임상의학의 탄생’(이매진, 2006) 같은 초기 저작들은 앞으로 펼쳐질 시선, 비이성과 광기에 대한 ‘푸코 사상’의 예고편이다.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프와티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에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뒤 다시 고등사범학교 준비반 과정에 들어가 공부하지만 낙방한다. 푸코가 고등사범학교 시험에 합격한 것은 1947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26세 때인 1951년에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알튀세의 추천으로 고등사범학교에서 자리를 얻어 강의를 한다.

푸코는 30대 전반기를 스웨덴·폴란드·독일에서 보냈다. 그의 신분은 프랑스 문화원장이었다. 36세에 ‘광기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으로 돌아온다. 훗날 후기구조주의 철학자·교수로 이름을 알렸지만, 무엇보다도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의 명강의, 천재적인 철학자, 거리의 투쟁가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는 정신의학·의학·감옥의 체계에 대한 비판과 성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한 이론과 서양이 쌓아온 지식의 역사에 관한 ‘담론’을 다루었다. 그의 해석과 담론들은 여러 논쟁과 토론을 촉발시켰다. 사람들이 푸코가 ‘저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쪽으로 가 보면 푸코는 이미 거기에 없다. 사람들은 다시 푸코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쪽으로 가 보면 푸코는 거기에도 없다. 푸코 자신은 이렇게 적는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도 말라. 이것이 나의 도덕이다. 이것이 내 신분증명서의 원칙이다.”(‘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1992)

푸코는 사유와 쟁점과 투쟁이 필요한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그는 스페인·브라질·폴란드·이란 등의 국경을 종횡으로 넘나들고, 이민자운동·사형제도 폐지·근대권력의 폭력에 짓눌린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투쟁에 앞장선다. 따지고 보면 그가 출몰했던 곳은 늘 권력의 폭력이 작동하는 곳, 그리하여 투쟁이 필요한 곳, 혹은 투쟁이 있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근대권력의 폭력과 맞서 싸운 전사, 즉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전쟁 기계’였다.

‘말과 사물’(민음사, 1986)이 처음 나온 것은 1966년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 어려운 책이 나오자마자 빵집에서 ‘모닝빵’이 팔려나가 듯 팔려나갔다. 카페에서도 휴가지에서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말과 사물’은 프랑스에서만 11만부가 팔렸다. 그로 인해 얻은 명성은 곧바로 강연의 인기로 이어졌다. 그 당시 푸코의 강연장은 어디든지 사람들로 넘쳐났다. 프랑스 사회에서 잠재된 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푸코는 늘 전투의 먼지나 술렁임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사유 전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전쟁 기계인 것처럼 보입니다.”(질 들뢰즈, 1986년 클레르 파르네와의 대담에서. 여기서는 ‘책과 만나다’, 그린비, 재인용) 푸코를 알게 된 것은 김현이 엮은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문학과지성사, 1989)을 통해서다. 198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며 서울에서도 지식인들이나 작가들이 모인 자리마다 푸코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했다. 나는 의무감으로 푸코를 읽었다. 읽으니,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랬던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세 권으로 된 ‘성의 역사’(나남, 1990)를 읽다가 본디 이 책들이 가진 어려움에 겹쳐 번역의 난삽함이 더해져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성은 억압되었는가? 푸코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성의 역사는 억압이 아니라 선동과 증대의 역사다. 거기서 수많은 ‘말’과 ‘권력 그물’이 생겨났기 때문에 마치 성이 억압된 듯한 착시가 생겼다. 수음을 금지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노동력의 필요가 커지자 쓸데없는 노동력의 낭비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푸코는 청교도주의나 금욕주의를 의심하고, 그 이면을 파헤친다. 그 결과 당시에는 ‘성 담론’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고해나 성의학, 정신분석학 따위가 지식의 가장자리에서 바글거렸음을 밝혀낸다.

신체·몸짓·행동·미래의 계획들은 개별적 의지의 산물이기보다는 권력에 제도화시킨 기관들, 즉 학교·군대·병원·감옥들의 규범에 의해 길들여지고 만들어진다. 제도화된 기관들은 진리의 담론들을 다룬다고 선전된다. 진리-지식은 그 자체로 권력이고, 권력은 진리-지식을 통해 작용하며 퍼져나간다. 학교·군대·병원·감옥들은 규율적 권력으로 개인들을 길들인다. 이 길들여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보상과 처벌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쓴다.

“신체는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되었다. 신체에 대한 조작되고, 형성되고, 훈련되고, 복종되고, 호응되고, 능력이 부여되든가 또는 힘이 다양하게 되는 그러한 대규모의 관심이 주어진 여러 특징이 쉽게 발견되었다.”(‘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 나남, 1994) 근대권력은 국민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준화하며 ‘관리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 초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체를 지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정신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관리·감시·훈련을 통해 신체를 지배하는 정치 기술이 늘면서 근대 국가들의 권력도 함께 커졌다. 그렇게 근대 사회에서 신체가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하면서, 근대 국가들은 국민의 신체를 제 권력의 그물망으로 포획했던 것이다. 푸코는 감옥을 비롯해 가정·학교·군대·병원·공장 같은 감시기구, 혹은 처벌기구를 분석한다. 정신병원은 환자의 치료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이성을 중심적 가치로 섬기는 사회가 광인을 따돌려 내쫓고 가두는 장소다. 그 궁극의 목적은 권력의 지배를 단단하게 하고 억압의 수단을 공고하게 하려는 속셈이다. 감옥은 권력의 사회통제를 위한 전략의 산물로 하나의 ‘사물’이다. 이것은 감금이라는 새 환경을 만들며, 죄수라는 내용에 덧씌워진 형식이다. 내용의 형태로서의 ‘감옥’과 표현의 형태로서의 ‘형법’은 상호삼투하면서 서로의 성분을 빼앗는다. 형법은 죄수를 만들어 감옥으로 보내지만 감옥은 죄수를 교정(矯正)하고 처벌하면서 형법을 재생산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한국 지식사회에서 늘 화제의 중심이던 푸코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자취를 감춘다. 세월의 무상함인가. 신기할 정도로 이제는 누구도 푸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 지식사회의 부박함을 드러내는 씁쓸한 현상이다. 푸코의 철학은 이제 폐기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들뢰즈는 그에 대해 “푸코는 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의 철학자다. 19세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라고 평가한다. 푸코의 철학적 사유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를 넘어서려는 그의 사상적 기획들을 우리는 그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사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담론의 질서’(민음사, 1992), ‘비정상인들’(동문선, 2001),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동문선, 1998), ‘주체의 해석학’(동문선, 2007),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 2008), ‘권력과 지식’(나남, 1991) 같은 책들을 더 읽어야 한다. 동성연애자였던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라 그에 대한 소문은 흉흉했다. 어느덧 그가 떠난 지 스무 해를 훌쩍 넘겨 서른 해가 가까워지고 있다.

장석주 시인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나남, 2011
●미셸 푸코, ‘정신병과 심리학’, 박혜영 옮김, 문학동네, 200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 2011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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