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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입대 후 7년간 전쟁터에…
뼈저린 아픔 웅숭깊이 그려내
바오 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의 나이에 1969년 북베트남군에 자원입대했다. 3개월간 사격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가 첫 전투에서 소대원들이 대부분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 소대 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베트남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사이공 진공작전에 참여한 뒤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는 이후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베트남 산하에 버려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신을 수습한 다음 전역했다.

문학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거친 후 1991년 출간한 첫 장편 ‘전쟁의 슬픔’은 출간되자마자 ‘베트남 작가협회 최고상’(1991), 런던 ‘인디펜던트’ 번역문학상(1995),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2011), ‘일본경제신문 아시아문학상’(2011), 베트남에서 읽히고 있는 모든 책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좋은 책 상’(2011) 등을 수상하며 베트남 문학계와 독자들은 물론 16개국에서 번역 출간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이 작품이 이토록 찬사를 받은 것은 작가 자신이 처절한 전쟁을 직접 체험한 뒤 쏟아낸 진실한 육성의 힘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죽음과 죽임이 난무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옥도가 작가의 도저한 슬픔의 언어에 실려 펼쳐진다. 이데올로기나 애국심을 자극하는 ‘목적문학’이 아닌, 말 그대로 전쟁의 슬픔과 인간의 아픔을 웅숭깊이 그려냈다. 그 속에는 순결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이 어떻게 전쟁으로 인해 파괴돼 나가는지 가슴 아프게 녹아들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쟁에 관한 모든 미국 소설을 뛰어넘는다’(‘뉴요커’)는 평을 받았고, 금세기 위대한 전쟁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인디펜던트’)는 찬사까지 받았다. 바오 닌은 한국에 세 번 다녀갔으며, 방현석 김남일 등 한국 문인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어 왔다. 현재 하노이에 거주하며 두 번째 장편소설 집필에 전념하는 중이다.

조용호 기자 20120513021425 바오 닌과 ‘전쟁의 슬픔’ //img.segye.com/content/image/2012/05/13/20120513021425_0.jpg 1 26 09 6 저작자 표시 + 변경금지 N 20120513020937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순 없어” 20120513161222 20120513202053 20120513174134 하노이까지 날아가 베트남의 대표작가 바오 닌(60·Bao Ninh)을 만나려고 한 것은 한국에서 새롭게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 때문이었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정작 세계문학에서는 소외돼 있는 아시아의 문학을 ‘아시아문학선’이라는 이름으로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발간하기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이다. 1999년에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번역본은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중역한 것인 데다 중간에 빼먹거나 간단하게 축약한 부분들도 적지 않아서 이번에 베트남어 원본을 텍스트로 삼아 새롭게 번역했다.‘전쟁의 슬픔’을 대하는 독자들은 첫머리에서부터 밀림에 진동하는 시취와 시체와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몽롱하고 어두운 색조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끼엔’이라는 병사의 상념을 따라가게 된다. 작가 자신이 수많은 전투에서 시체의 언덕을 넘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이어서,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핍진한 죽음과 죽임은 전율로 다가온다.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베트남 대표작가로 떠오른 바오 닌.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바오 닌은 하노이의 자택으로 일행을 청했다. 1층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인터뷰는 대충 건너뛰고 술이나 마시자”며 서둘러 술병의 마개를 땄다. 지독한 죽음의 터널을 지나온 퇴역병사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또한 술을 마신 자가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이런저런 상념 속을 건너 뛰어다니며 두서없이 전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둔중한 슬픔의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와 오래 친분을 유지해 오며 허물없이 지내는 통역을 맡은 한국 여인이 “바오 닌은 산만한 아이 같다”면서 인터뷰부터 마치자고 그를 달랬다.―출간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당신 작품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전쟁 속 사람들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의 베트남 전쟁문학은 문학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과도하게 강요했다. 예컨대 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시계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당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규정되어야 했다. 내 작품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사회주의가 요구했던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지금 북한의 문학이 예전 베트남문학과 수준이 비슷하지 않을까.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그런 글들을 읽지 않는다.”―당신에게 ‘슬픔’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를 뛰어넘는 무게를 가진 것 같다. 소설에서 당신은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썼다. 당신을 해방시킨 ‘슬픔’의 질감은 보통사람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솔직하게 말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아주 특별한 환경 속에 있었다. 종전 직후의 베트남은 정말 너무 가난했지만 전쟁의 승리에 모두 들떠 있었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행한 줄도 슬픔도 잘 몰랐다. 그때의 상황은 말로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한다. 글로 써야만 했다.”―베트남은 전쟁이 끝난 지 37년이나 흘렀지만, 휴전 상태인 한국에서는 아직 전쟁의 슬픔이 진행 중이다. 이 소설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는가.“작가란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육자도, 정치 간부도, 도덕가도 아니다. 사회주의 예술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고 무언가에 늘 봉사해야 했다. 베트남도 그런 시기를 견뎌야 했다. 다만 바라건대, 한국이 문제를 적어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통해 전달됐으면 좋겠다.”―당신이 싸웠던 적들 중 하나가 한국군이었는데….“내가 병사로서 전쟁을 할 때는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사이공군대든 다 적이었고 서로 총을 쏘고 죽여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날한시에 자식을 서너명씩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가슴에 묻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끔찍한 전쟁을 7년이나 겪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인가.“전쟁을 단 하루만 겪더라도 인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17세에 병사가 돼서 그 참혹한 죽음의 바다를 건넜는데, (그 뒤끝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내가 이 소설을 썼다고 이전의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나에게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지나온 전쟁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죽은 사람들을 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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