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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17> 전주이씨(全州李氏)

조선왕실 가문… 122개파 태조 이성계 이전 이후로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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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19 04:23:06      수정 : 2011-10-19 04:23:06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우리나라 본관별 성씨 인구 순위에서 김해김씨(412만5000명), 밀양박씨(303만1000명) 다음으로 많은 성씨이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전주이씨는 260만9890명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5.7%를 차지하는 것이다. 전주이씨의 파는 총 122개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효령대군파, 광평군파, 덕천군파, 밀성군파, 양녕대군파 등이 번창했다.

전주이씨는 조선왕실 가문으로 유명한데, 그 시조는 신라 말에 사공(司功)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으로 알려져 있다. 이한의 22세손이 바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이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조선은 총 27대(대한제국의 순종을 제외하면 26대) 왕을 배출했으며 500여년을 통치했다. 임란과 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는 등 국난도 많았지만, 6진 개척 등 국가의 영토를 확장했고, 한글을 창제하는 등 민족문화 발달에도 크게 공헌했다. 

전주이씨 분파는 122개로 알려져 있는데, 크게 태조 이성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태조 이성계 이전의 분파는 또다시 고조부인 이안사(李安社) 선대에서 갈라진 분파와 이안사 이후 이성계 이전에 갈라진 분파로 나뉜다.

이안사 이전의 분파로는 이한의 14대손인 이단신(李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15대손 이거(李巨)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17대 이영습(李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主簿同正公派), 이안사의 종손 이윤경(李允卿)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 이한의 21대손 이귀을(李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 등이 있다. 이안사 이후, 태조 이성계 이전의 분파로는 이안사의 아들인 안천(安川), 안원(安原), 안풍(安豊), 안창(安昌), 안흥(安興) 등의 5대군파와 이행리의 아들인 함녕(咸寧) 등 7대군파, 춘의 아들인 완창(完昌) 등 4대군파, 이자춘의 아들이며 태조의 서형제(庶兄第)인 완풍대군파(完豊大君派)와 의안대군파(義安大君派) 등 18개가 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 후손의 분파로는 그 후손이 99파(고종까지 大君 25, 君 74명)로 알려져 있으나, 미혼으로 죽거나 후사가 없는 대군, 군이 20여명 되기 때문에 그 분파는 많이 줄어든다. 그래서 현재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등록된 파종회는 총 86개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은 각 본관의 시조 또는 파조는 왕(임금)이 아니라 그 아들 또는 형제를 시조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왕(임금)이 모든 백성의 어버이이기 때문에 특정 성씨의 시조나 파조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를 시조로 하는 파가 없는 것이며, 경순왕을 시조로 하는 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대군이나 군파(君派)는 있어도 왕(임금)을 시조로 하는 본관(本貫)이나 파(派)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전주이씨의 사실상 중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전주이씨의 유래


우리나라의 김씨가 신라계 김씨와 비신라계 김씨(김해김씨)로 나뉘듯이 이씨(李氏)는 토착 이씨와 외래 이씨(주로 중국계)로 나뉜다. 토착 이씨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를 비롯하여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본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경주김씨에서 갈라져 나온 광산이씨(光山李氏), 김수로왕의 김해허씨(金海許氏)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이씨(仁川李氏) 등도 토착성씨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계통으로는 연안이씨(延安李氏), 고성이씨(固城李氏), 상산이씨(商山李氏), 안성이씨(安城李氏), 원주이씨 구파(原州李氏 舊派), 태안이씨(泰安李氏), 평산이씨(平山李氏) 등이 있으며, 만주계통으로는 청해이씨(靑海李氏), 월남계통으로는 정선이씨(旌善李氏), 화산이씨(花山李氏) 등이 있다.

그런데 전주이씨에 대해선 외래 성씨라는 주장과 토착 성씨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즉,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에 대해 ‘당나라 도래설’과 ‘경주이씨 분적설’이 공존하는 셈이다.

먼저 경주이씨에서 분적했다는 ‘경주이씨 분적설’을 살펴보자. 경주이씨는 신라 6부족 중 하나인 급량부를 본거지로 한 부족의 성씨이다. 경주이씨의 시조인 알평(謁平)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급량부의 촌장이 되었는데, 6부족의 촌장과 논의하여 박혁거세를 왕위에 세웠다. 2대 유리왕 8년(기원전 32년)에 신라건국의 공을 인정받아 아찬(阿餐) 벼슬에 오르고, 이씨 성을 사성받았다. 그 후 소판공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경주이씨의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에서 중시조인 이거명까지의 세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 말기 무렵에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족보에서 이알평에서 이거명까지의 36대 명단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중 34대 이희두(李禧斗)의 동생 진두(辰斗)의 손자가 전주이씨의 시조인 사공공 이한(李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말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알평에서부터 이거명까지의 계보가 갑자기 발견된 점이나, 이희두의 동생으로 진두를 거명하며 두(斗)라는 동일 항렬자를 쓰고 있는 점(동일 항렬자를 쓰는 것은 조선시대 족보제작이 유행하면서 정착되었다)을 생각할 때, 이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이한의 중국 전래설이 있다. 이는 작자와 연대가 밝혀지지 않는 ‘완산실록(完山實錄)’에서 주장된 것이다. 완산실록에는 “우리 시조 사공 공의 휘는 한(翰)이요, 자는 견성(甄城)이시다. 공은 본디 중원(中原 : 중국)에 살았다…(중략) 배가(裵哥)의 모함을 피해 바다를 건너오게 되었다…(중략) 문장이 뛰어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 문성왕이 사공의 벼슬을 주었다. 그 후 태종(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의 사위가 되었다”고 씌어 있다. 이외에도 전주이씨 득성의 유래를 기록한 글들에서는 전주이씨가 본래 중국 당나라 황실의 후예라고 하며, 시조 한(翰) 이후 대대로 전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전래설은 성씨 득성 과정을 기록하며 사대주의적 모화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부여받기 힘든 것 같다. 즉 중국전래설을 주장하는 성씨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한림원 학사, 또는 황실 성씨 등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두 가지 주장 모두 씨족의 세계도, 또는 족보 만들기가 유행한 조선시대에 주장된 것들이어서 그 신빙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주이씨는 시조 이한(李翰) 이후로 전주에서 살아온 토성(土姓)이었던 것 같다. 시조 이한의 선대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밝혀지고 있진 않으나, 각 성씨와 본관들이 신라말이나 고려조에 들어와 성씨를 쓰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과정을 볼 때 이한에서부터 이씨 성을 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주이씨 시조 이한을 모신 조경묘정전. 조선왕조 때 전주이씨의 시조묘와 사당으로 건립됐는데, 동학란 이후 소실될 것을 우려해서 옮겨 놨다가 해방 후에 이 자리로 위패를 옮겨 놓고 기리고 있다.

전주이씨의 연혁과 인물

시조 이한에서부터 시작된 전주이씨는 목조 이안사(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이전의 선원선계(璿原先系·왕의 조상을 선원이라고 한다), 목조 이안사에서 태조 이성계까지의 각 파를 선원파계(璿原派系), 태조 이성계 이후의 선원속계(璿原續系)로 나뉜다. 그중 선원선계에서는 무신란을 일으키고 실권을 장악한 이의방(李義方)과 그의 동생 이린(李隣)이 유명하다. 이린의 아들이 장군 이양무이며, 이양무의 아들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이다. 이들은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오다 새로 부임한 호족과 사이가 나빠져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쳐 원나라 간도로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듯 이안사 이전의 전주이씨는 전주에서 지방 토호로 살아왔으나, 고려 무신란에 이의방이 참여한 이후 중앙정계의 부침에 따라 가문이 어려움을 처하게 되어 강원도, 함경도를 거쳐 원나라까지 흘러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나라 간도지방으로 피신한 이안사는 그곳에서 다루가치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자 이자춘이 고려에 공을 세워 사복경에 이르렀다. 이어 그의 아들 이성계는 고려의 병마사를 거쳐 위화도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게 되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태조 이성계는 사실상 전주이씨의 중시조 구실을 하고 있다.

전주이씨의 분파 중에서 가장 번성한 파는 세종의 열세번 째 아들 이침(李琛)을 파조로 하는 밀성군파(密城君派)이다. 그다음이 정종의 열 번째 아들 이후생(李厚生)을 파조로 하는 덕천군파(德泉君派)가 있고, 세종의 다섯째 아들 이여(李璵)를 파조로 하는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등이 번창한 가문으로 알려진다.

전주이씨의 인물로는 조선왕조의 가문이니만큼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많다. 하지만 국왕은 특정가문의 인물로 서술할 수 없기에 전주이씨의 인물에서는 제외한다. 그럼에도 역사적 인물들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다. 고려 이후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씨의 인물 중 셋 중 하나는 전주이씨 가문에서 배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기틀을 잡았다는 공과 분단국가를 만들고 독재를 자행했다는 과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근현대사에 들어와서 대표적인 전주이씨 인물로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이 있으며, 이범석 전 국무총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이현재 전 총리, 이선근 전 문교부장관, 이종림 전 교통부장관 등이 있으며, 전 현직 국회의원도 70여명이나 존재한다.

이의방(李義方)은 1170년(의종 24) 견룡행수(牽龍行首)로서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와 함께 무신란을 일으켰으며, 대장군·전중감(殿中監) 겸 집주(執奏)에 임명되고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책록되었다. 후에 이고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중방(重房)을 강화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실권을 장악한 뒤 승려들과 적대하다가 조위총(趙位寵)이 난을 일으키자 토벌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권력에서 축출되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의 아버지이며 문극겸의 사위인 이린(李隣)의 형이다.

이승만(李承晩)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다. 호는 우남(雩南)이며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이경선(李敬善)의 아들이다. 서재필(徐載弼) 등이 독립협회 등을 조직하자 이에 가담하여 개화·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후에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에 머물면서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여 1907년 졸업하였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3·1운동 이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외교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주력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독립촉성중앙위원회를 결성하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6·25가 일어나고 정부가 부산에 피란해 있던 1951년 12월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하여 자유당을 창설하였으며,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정치를 시도하였다. 결국 1960년 3·15부정선거와 자유당 독재로 4·19를 초래하여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그해 5월 하와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이회창(李會昌)은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 법학과와 하버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법학 공부를 하였다. 대법관과 26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한나라당 제15대 대통령 후보, 제16대 대통령 후보, 무소속으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바 있다. 현재는 18대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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