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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걸작이 일깨워주는 불편한 성찰 '특급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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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03 10:42:50 수정 : 2011-03-03 10: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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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그동안 많이 접해온 위안부 관련 연극이다. 그렇다고 또다시 위안부 이야기냐고 지레 푸념하지는 말 것. 미국인이 본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연극 [특급호텔](작 라본느 뮬러, 연출 박정의)에 대해 아주 작은 정보라도 들은 게 있다면, 이 작품의 마력에 쉽게 발을 빼긴 힘들 것이다.

연극은 11세에서 25세에 이르는 어린 여성들이 차마 말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치욕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극을 채워간다. 여타 위안부 관련 작품에서 보여지는 눈물, 콧물 짜내는 체루성 연극과는 색을 달리한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의 노예가 된 여인들의 참혹한 장면 장면은 전혀 눈앞에서 펼치지지 않는다. 우선, 배우들이 절제된 언어로 들려주면 다시 한번 관객의 머리 속에 리얼한 장면이 각인되는 식이다. 이렇게 이 작품이 매력을 발산하는 지점은 이야기가 하나 하나 쌍여가는 방식에 있다.

시각보다 강력한 게 청각이다. 더더욱 강력한 건 인간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는 연극다운 연극을 무대에서 만났을 때 감흥이다. 그런 점에서 2nd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에 선정 돼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특급호텔]은 관객들의 잠들어있는 청각과 적극적으로 시도한 연극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많은 공연들이 역사적 사실과 관련 된 작품을 무대에 들고 나와 분주히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려고 했지만 소통을 거부당한 것도 사실. 정서적 감흥을 과도하게 시도하려다 부담을 준 결과이다. 이번 작품 역시 기본 줄기는 위안부들의 고통과 실상을 관객들이 생생하게 느끼고자 함이다. 그러나 소통 방식에서 차이를 둬 관객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참상을 파헤쳐보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다.

일부는 극중 대사로 직접 전달되기도 하고 일부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벼랑같은 무대로 주제를 전달한다. 염소의 울음소리, 귀뚜라미 소리등으로 고향을 그리는 소녀들의 마음을 상상하게 만들고, 선희(안꽃님)의 도려진 가슴으로 관객들의 가슴에도 생채기를 만들어낸다.

옥동(이상희)의 격한 목동작과 함께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끊임없이 얼굴과 목을 닦는 동작으로 인해 그들의 내면은 더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인형으로 형상화된 여인의 몸에서 맨 손으로 핏덩어리를 잡아빼는 퍼포먼스 역시 작품의 이미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모두가 편안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에만 집중하며 전력 질주 할 때, 극단 초인은 연극다운 연극을 들고나와 관객을 사로잡는다. 일부 관객은 [특급호텔]이 여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편하고 단맛이 나는 극적 재미가 없다고 불평을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고단한 하루를 뒤로 하고 연극 한편 즐기는겠다는데 왜 이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뒷걸음진다면 당신이 속한 인간 존재 역시 가볍게 치부되고 말 것이다. 극장에 있는 순간만 '반짝' 웃음을 전해주는 연극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극장에 있는 100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연극을 선택할 것인지는 당신의 몫이다.

11세 선희는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보석처럼 만지는 게 어떠한 것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 게다가 가장 아름답고 예뻤던 시절을 짐승들을 상대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쉬 잠들지 못하는 그녀의 영혼이 6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을 행진하고 있다. 그녀의 행진에 관객들은 박수 하나와 성찰 두스푼을 보탤 뿐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이 행위가 거창한 보상과 미래를 눈 앞에 내놓을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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