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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좇아가기 ‘학문 식민지’ 못 벗었다

입력 : 2011-01-07 21:15:01 수정 : 2011-01-07 21: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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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상을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21세기 철학의 방향
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
‘대우학술총서’ 600권 기념호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


척박한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를 집중 지원해 우리나라 기초 학문의 균형성장을 꾀한다는 취지로 1980년 출범한 대우재단이 30년을 맞았다.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의 200억원 출연으로 만들어진 대우재단이 30년간 지원한 연구과제는 총 1370건에 달하며 참여한 학자만 1800명에 이른다. 연구 지원 결과물은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로 출간됐다. 1983년 11월 ‘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지음)을 시작으로 인문학 219종, 사회과학 127종, 자연과학 208종 등이 출간된 ‘대우학술총서’는 최근 600권 기념호로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을 내놨다.

그동안 연구지원이 많이 이뤄진 14개 학문 분야의 현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모색한 600권 기념호엔 특집으로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김두철 고등과학원 원장, 이태수 인제대 철학과 교수가 ‘우리 학문의 현황’을 주제로 가진 대담을 실었다. 이들은 학계의 양적 팽창에 대한 문제, 번역 문제, 영어 강의, 학문의 융복합 경향을 포함해 서구 중심으로 재편된 학계에서 우리 학문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김광억 교수는 “문화 간의 이동 혹은 통관 과정의 고민이 담긴 원전의 번역 없이 이차적인 연구서의 번역이 주류를 이루는 현실이 우리 학문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고 진단했고, 이태수 교수는 최근 부쩍 강조되는 영어 강의와 외국어 논문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말로 이루어지지 않는 학문 활동이 어떻게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또한 “국내 학자들은 동료 학자의 작업에 무관심한 경향을 보인다”는 김두철 원장은 “단순히 유행처럼 융복합 학문을 내세울 게 아니라 학문 간의 소통을 위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 학문의 현황’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는 김두철 고등과학원 원장,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이태수 인제대 철학과 교수(왼쪽부터).
세 학자는 “9세기까지 우리 학문의 중심지는 중국이었고 사용되는 언어도 당연히 한문이었다”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에게는 학문 활동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 학자들이 학문 활동을 한 것은 겨우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50년 정도로 잡을 수 있으나 서구 학문과 학자들을 좇기에 바쁜 ‘학문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학문적 상황을 진단한 세 학자는 입을 모아 “글로벌 시대에 우리 학문이 어떻게 자생력을 확보하면서도 세계적으로 교류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우리 학계의 과제”라고 말했다.

분야별 학문현황 분석에는 서울대 장경렬(문학)·최정운(정치학)·황익주(인류학)·노정혜(생명과학), 고려대 김경현(역사)·김균(경제학), 포스텍 이진우(철학)·박형주(수학)·정윤희(물리학), 서강대 윤경병(화학), 성균관대 도경수(심리학), 부산대 김성국(사회학), 이화여대 장영민(법학) 교수 등 1986년 발족된 한국학술협의회 회원들이 참여했다.

장경렬 교수는 “인간은 과학과 기술 공학의 시대에서조차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삶을 살아갈 것이므로 문학은 ‘과학화’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현 교수는 제국 또는 패권 중심의 ‘낡은 세계사’의 대안으로 탈서구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새로운 세계사’를 제시하고, 장영민 교수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충분히 높지 않으면 로스쿨 운영이 왜곡될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교수는 “한국 철학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학문의 발전을 방해한다”며 “다양한 사상을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21세기의 철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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