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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의 오토뮤지엄] 현대자동차(주)의 뿌리, 아도서비스 공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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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4 23:02:40      수정 : 2010-09-14 23:02:40
[세계닷컴 제휴사=탑라이더]현대자동차의 탄생은 아도서비스라는 일제시대 말의 정비공장이 바로 그 뿌리이다. 1940년대 초 서울에 있던 아도서비스(Art Service)와 정주영씨의 인연이 현대자동차를 세우게 된 동기라 한다. 가난이 싫어서 돈벌어 잘 살아 보겠다는 대망을 품고 강원도 북쪽 산골에서 서울로 올라 온 청년 정주영은 막노동 등 1년여 간의 고생 끝에 서울 신당동에 있던 쌀가게에 취직하여 자리를 잡고 열심히 일했다. 
▲ 중년 시절의 정주영회장

천성이 부지런하고 신용을 인생철학으로 삼아 일한 덕택으로 쌀가게를 인수받아 어였한 사업가로 출발했다. 정주영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쌀가게 주인이 되면서 부터였다. 그는 트럭을 한 대 구입 농촌으로 다니면서 직접 쌀을 구입해 와서는 도매도 겸했다. 그런데 잘 되어가던 가게는 장사한 지 2년 째 되던 1939년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군수품 비축을 위해 국내의 경제를 통제하기 시작 쌀의 자유판매를 금지하고 배급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가게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은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 

일본의 통제를 받지 않는 사업을 찾다가 어느 날 자기 트럭을 단골로 정비해 주던 정비사 이을학씨를 만나 길을 찾게 됐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컸던 정비업체인 ‘경성모터스’에서 일하던 이씨의 권유로 서울 북 아현동에 있던 ‘아도서비스’라는 조그만 정비공장을 1940년 그의 나이 25세 때 당시 돈으로 3천5백 원을 주고 인수하면서 자동차정비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인수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공장은 정주영의 열성과 신용 때문에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와 당장에 흑자로 올라 개업 20일 만에 친구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모자라서 빌린 돈의 절반과 인수 잔금을 갚을 만큼 잘 되어 나갔다. 
▲ 1930년대말 정주영 소유트럭

그런대 돈을 갚고 난 5일 후인 새벽에 밤새도록 일을 하고 난 한 공원이 기름투성이 손을 씻기 위해 시너로 불을 지펴 물을 데우다가 그만 잘못해 불이 나고 말았다. 불은 것 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번져 공장은 물론 수리하던 트럭 3대와 순정효 황후의 숙부였던 윤덕영씨의 자가용인 미국차 올즈모빌 등 4대를 몽땅 태우고 공장 밖 길거리에서 수리하던 트럭 두 대도 반이나 타버렸다. 정주영은 눈앞이 캄캄했다. 공장재건보다 타버린 자동차를 배상해 줄 돈이 부족했다. 

생각다 못한 정 사장은 거래했던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평소에 정사장의 신용과 사람됨을 믿던 고리대금업자는 1천원을 빌려주었다. 겨우 타버린 자동차를 배상했으나 공장을 다시 세울 돈이 없었다. 그러나 정비업의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천성인 배짱과 투지력이 다시 발동했다. 비장한 각오로 맨주먹 하나 쥐고 장소를 찾아 며칠 해매다가 신설동 뒷골목에서 조그만 빈 공터를 빌릴 수 있었다. 이곳에다가 겨우 자동차 앞머리만 들여놓고 엔진을 수리할 수 있는 닭장만한 목조공장을 짓고 무허가 정비업을 시작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

※위 기사는 세계닷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탑라이더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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