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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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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05 22:51:25 수정 : 2010-09-05 2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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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활동 통해 번 돈 국민의 행복 위해 투자해야죠'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빚만 20억원을 지고 회사가 파산했을 때 직원이 모두 떠난 9층 빈 사무실에서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투신하려는 순간 전화를 한 세무서 직원이 제 생명의 은인이 됐습니다.” 최근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란 광고문구로 유명한 ㈜천호식품 김영식(59) 회장은 12년 전의 비참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영식 회장이 부산 사상구 덕포동 천호식품 본사 회장실에서 2008년 출간돼 25만부가 팔려나간 ‘10m만 더 뛰어봐’ 저서를 들고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잠시 뒤 뛰어내리려 한다’고 말하자, ‘그건 댁의 사정이고 밀린 세금은 갚고 죽으라’고 매정하게 쏘아붙이는 세무서 직원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 죽을 수 없어 이를 악물었다”고 회상했다.

올해로 창립 26주년을 맞은 천호식품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250억원에 연매출 800억원, 임직원 300명에 달하는 국내 굴지의 건강식품 전문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게다가 출산 장려와 금연 홍보, 불우이웃돕기, 장학사업 등 사회 공익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5살 때 고향에서 ‘일일수업’이라는 학습지 판매원을 시작하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확장 일로를 걷던 학습지 사업권을 친형에게 넘긴 그는 부산으로 옮겨 신발 깔창을 만들어 판매하다 1980년 ‘세계 금연의 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금연 파이프’ 아이템 하나로 6개월 만에 60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이라 했던가.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장난감 주방용품 등에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이내 수중에 돈이 떨어졌고, 집에는 쌀 한 톨 남지 않은 신세로 전락했다. 당시 그는 지인에게서 물건 값을 나중에 지급하기로 하고 겨울 조끼를 대량으로 가져와 리어카에 싣고 내달 팔아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는 1984년 부산에서 천호물산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저주파 치료기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불운은 이어졌다. 1986년 교통사고로 왼쪽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6개월 이상 깁스를 하고 지냈지만 뼈가 굳질 않았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권유해 달팽이를 달여 먹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9년 달팽이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 천호물산을 천호식품으로 변경했다. 김 회장 선친이 작명한 천호(泉湖)라는 회사명은 ‘깨끗한 샘에서 물이 솟아 큰 호수를 이루면 많은 사람에게 물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91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달팽이 엑기스는 대성공을 거둬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43살이던 1994년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명 안에 들 만큼 많은 돈을 벌었다. 자금력이 생기자 욕심도 커져 건강식품 외에 다각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김 회장은 당시 인기를 끌던 서바이벌 게임장과 황토방, 건설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하청업체에 준 어음의 만기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집과 공장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보가 그때 날아들었고, 회사는 풍비박산이 났다. 1998년 초 2900여㎡짜리 공장에는 직원 4명만 남았다.

서울 서초동 서울사무실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다가 자살을 생각한 것은 그때였다. 세무서 직원의 전화에 마음을 다잡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쑥 진액의 빈 상자. 사업이 잘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쑥 엑기스’인데,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곤 쑥 진액뿐이었다.

◇김영식 회장이 지난해 부산의 한 병원에서 셋째 아이를 출산한 주부에게 출산 장려금을 건넨 뒤 격려하고 있다.
김 회장은 아내가 선물로 준 반지마저 전당포에 맡겨 사실상 마지막 사업자금인 130만원을 마련했다. 박스당 20만원 하던 쑥 진액을 만들어 5만원에 팔기 시작했다. 동창회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식사비 5000원이 아까워 소시지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여관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때부터 일기를 썼다. 첫 일기의 첫 줄은 ‘영식아 변하자’였다. 새벽에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전단을 뿌리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제가 변해야만 살 수 있었고, 쑥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쑥 이야기를 했고 비행기 안에서도 전단을 뿌렸고 쑥 노래도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단을 뿌린 첫 달 1100만원이었던 매출은 6개월 뒤 2억5000만원으로 급증했고, 2년 뒤에는 100배로 뛰었다.

이후 천호식품은 마늘 엑기스 등을 개발해 꾸준한 매출 상승세를 타면서 지난해 매출 8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현재 170여가지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김 회장은 회사경영이 안정권으로 접어들자 사회 공익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천호식품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지난해 ‘희망의 스위치 프로젝트’ 사업을 벌였다.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1년 동안 1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매월 1000만원을 들여 20명에게 1인당 50만원씩 지원한 것이다. 지원 대상자는 매월 바뀌었다.

김 회장은 “‘희망의 스위치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 더 많은 희망의 불이 켜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호식품은 내년부터 ‘희망의 스위치 프로젝트’를 대신한 불우이웃돕기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천호식품은 또 지난해부터 셋째 자녀 출산 가정들에 지원했던 출산 장려금을 2억원에서 올해 5억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수혜 대상자도 2배 이상 늘어 올해 250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청자격은 셋째 자녀를 임신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며, 김 회장이 운영하는 포털 다음 카페 ‘뚝심이 있어야 부자 된다’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지원금 5억원은 김 회장의 저서로 25만부 넘게 판매된 ‘10m만 더 뛰어봐’의 인세 전액과 200회 정도의 강연료 수입 전액, 천호식품 이익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김 회장은 “출산 장려 캠페인은 대한민국 기업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기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계속 투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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