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장 표명 불가피…불법거래 확인도 어려워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처리 방향을 놓고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월1일 포괄적 이란 제재법의 발효에 따른 시행세칙이 지난 17일 나옴에 따라 정부로서도 명확한 입장 표명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르면 다음달 초에 정부의 방침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멜라트은행이 대량살상무기(WMD) 또는 테러와 관련한 불법 거래에 연루됐다는 첩보를 한국 정부 측에 전달해 온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특히 이달 초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도 이 같은 첩보를 우리 측에 전달했다. 금융당국이 최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불법거래 여부를 조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미 정부가 우리 측에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 또는 계좌 동결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 정부는 한국이 미 제재법에 맞춰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폐쇄 등 제재 조치를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정부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금융당국의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조사 결과를 검토하고 국내법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시행세칙이 국내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검토 중이다. 문제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거쳐간 자금이 제3국에서 불법 거래에 사용됐다면, 우리 정부로서도 알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법에 제재 규정이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정부는 민간 거래에서는 은행들이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포괄적 이란 제재법은 미 재무부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한 제3국 금융기관이 미국 은행과 거래할 경우, 해당 미국 은행이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지, 이란 은행과 거래할지는 금융기관 자체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외환은행이 최근 멜라트은행과 거래를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시행세칙으로 큰 틀에서의 이란 제재에 대한 체계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시행세칙 자체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향후 미 행정부가 사안에 따라 어떻게 조치하는지를 봐야지만 구체적인 처벌 범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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