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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융·복합이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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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29 19:35:12 수정 : 2010-04-29 19: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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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에 복잡한 문제 수북
실현 위해 신뢰·존경심은 필수
수백명이 들어가는 대형 천막 안에 커다란 라운드 테이블이 수십개 놓여 있다. 테이블 중앙에는 붉은색 장미 한 다발과 레고 블록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도 구석진 테이블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레고 블록으로 장난을 하면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설립자인 네그로폰테 교수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사실 여기 오기 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디지털 미디어를 연구한다고(?). 미디어라는 단어는 언뜻 신문과 방송을 떠올린다. 디지털이란 용어는 신물이 날 지경이다. 대학교 다닐 때 디지털 전자회로 설계하느라 혼이 난 경험이 아직도 새롭다. 디지털은 엔지니어의 것이다. 그런데 웬 예술가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단 말인가. 이공학 분야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생뚱맞게 미디어 연구는 왜 하는가. 게다가 설립자는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란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이 났을 뿐이었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약 20년 전, 나는 그렇게 MIT 미디어랩 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20년 후에는 미디어랩을 한국에 유치하느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아직도 미디어랩이 학문적인 측면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시된다. 그러나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인접 분야의 접목과 융합을 시도한 것은 그 당시 전혀 새로운 것이었고 매우 커다란 용기이자 모험이었다. 그 이후 컴퓨터 인터페이스, 의복형 컴퓨터, 제3세계의 청소년을 위한 200달러 컴퓨터, 요즘 붐이 일기 시작한 전자책의 핵심 기술인 전자잉크 등을 개발했다. 그곳 졸업생들은 컴퓨터 게임의 혁신을 주도했으며 할리우드에 진출, 미국 영화산업의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미디어랩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마치 미디어랩의 찬가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이질적으로 보이는 분야 간의 융합과 복합. 그리고 용기와 모험. 이것에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과학기술계에서는 융·복합이란 키워드가 뜨고 있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학문 영역이 지금처럼 복잡하지도, 많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로 학문이 깊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처럼 세밀하게 나뉘게 됐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복잡한 세상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복잡한 해결책을 요하게 마련이다. 우주 탐험, 자원 탐사, 지구 온난화 등 거창한 문제는 말할 것 없고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개발이나 입체영화 제작도 과학기술 간의 융합, 과학과 예술의 접목을 필요로 한다.

이질적인 분야 간의 융합 하면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른다. 예술가, 과학자, 공연 기획자, 군사 기술자, 엄청난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진득하게 매달리기보다는 수많은 일을 동시에 벌여놓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인정된 것 같다.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구조와 기술 수준에 미루어 볼 때 다양한 분야에 박식하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빈치와 같은 소위 르네상스형 인물이 바람직하겠으나 그런 인물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분야마다 고도의 전문성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 해답은 극소수에 의한 융·복합이 아니라 다수에 의한 융·복합에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복잡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융·복합의 핵심은 타분야에 대한 이해, 타분야 사람에 대한 존경심, 자신의 전문지식을 타인에게 기꺼이 제공하는 개방성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시대는 융·복합의 시대이다. 한 분야의 지식과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융·복합을 실현하는 데는 커다란 전제조건이 있다. 사람 간의 신뢰와 존경심이다. 과학기술 분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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