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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사무라이 이야기Ⅰ- 태조 이성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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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31 22:43:30 수정 : 2010-03-31 22: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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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을 우대한 조선 ‘武’를 숭상한 일본 가깝고도 멀 수 밖에 #1

1392년 7월,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립한다.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安社)가 전주를 떠나 두만강으로 이주한 이래 4대 만의 일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무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문신들을 우대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그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유교국가를 500여년 간 펼쳐 나갈 땅을 고른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그의 아들 태종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형제를 죽이며 왕좌를 차지하는 와중에서도 철인왕(哲人王)을 키우는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플라톤이 염원해 마지않던 철인군주는 그런 토양 속에 ‘세종’이라는 이름의 싹을 틔우며 찬란한 결실을 맺는다. 정책은 전통으로 굳어지고, 전통은 이념으로 승화되는 법. ‘근대’라는 ‘달력’이 현대로 바뀌어서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인들을 물리고 학자들을 앞세우는 문관 우대 정책으로 문치(文治) 국가 ‘조선’의 이념을 계승해 나간다. 
◇검은색의 일본 전통 기모노를 입고 커피를 선전하는 광고 사진 속의 일본인들. 한·일 양국 간의 통치수단이 붓과 칼이었던 차이만큼 양국 간의 지배계급 복식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의 선비가 흰 도포를 정숙하게 갖춰 입은 반면에 일본의 무사는 검은 기모노로 군인의 위엄을 한껏 내세웠다.
#2


1336년 7월. 일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가 벌어진다. 나날이 강성해지는 일본 중부의 반란군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황궁이 있는 교토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 상황. 결국 이에 대항해 고다이고(後醍 西胡) 천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당시 천황군의 무장은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 하지만 10만명에 이르는 적군 앞에 급조된 4만명의 병력으로 맞서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모한 도전이었다. 출전 전, 천황군의 장수는 아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통해 “천하가 이미 ‘아시카가’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으니 결코 전장에 따라오지 말 것”과 “내가 죽더라도 따라 죽지 말 것”을 당부한다.

◇도쿄 지요다구의 황거 안에 있는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동상. 도쿄에 있는 3대 사무라이 상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 충절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군주정치의 마지막 희망인 구스노키가 16차례에 걸친 대접전 끝에 패배한 후, 자신의 아들을 포함해 일족 16명과 함께 미나토가와(湊川) 강에서 자결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사실, 반란군과 천황군으로 맞선 아시카가와 구스노키는 한때 천황 복권을 위해 가마쿠라(鎌倉) 바쿠후에 맞선 피의 동지들이었다. 하지만 아시카가가 제2의 바쿠후 수립을 꿈꾸며 천황 타도의 길로 들어서자 주군을 택하며 죽음의 길로 뛰어든 것이다.

미나토가와 강 전투에서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아시카가는 이후 황도에 입성해 무로마치(室町) 바쿠후를 세우며 숭무억문(崇武抑文)의 무사 정권을 수립한다. 비록 천황은 남쪽으로 도망가 잠깐 동안 남조(南朝) 시대를 열지만 곧 멸망함으로써 일본 중세사와 근대사에서 ‘천황를 위한’, ‘천황에 의한’ ‘천황의 군대’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바야흐로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찍어 누르고, 힘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독교사로 대변되는 서양 중세사가 암흑 시대였던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이를 농락하며 ‘총칼’과 ‘무력’, ‘계급통치’로 백성들을 길들이는 ‘일본열도 잔혹사’는 이때부터 무한질주의 궤도로 들어선다.

외톨박이 ‘섬’이라는 씨줄과 지진·태풍 ‘재난지대’라는 날줄 위에 사무라이가 그림을 그려 넣은 직물이 21세기의 ‘일본’이다. 한국 근대사가 붓으로 쓰여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일본 근대사는 칼로 새겨져 대물림된 까닭에서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세종대왕이 꼽히는 가운데 정조와 영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 뒤를 쫓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태조 이성계가 으뜸으로 추앙받아 마땅하다. 일본사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태조 이성계의 초석(礎石)이 위대해지는 이유에서다. 시쳇말로 ‘태조 이성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2001년 개봉한 ‘두사부일체’의 영화 포스터. 320만명을 동원하는 호성적 속에 ‘상사부일체’와 ‘투사부일체’라는 속편이 제작될 만큼 많은 인기를 불러모은 영화로, 조직폭력배도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야 대접받는 한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에겐 숨 쉬듯 자유로운 ‘학자 우대 정책’과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는 당연한 사고방식은 결코 평범한 게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학자들이 정계와 사회에서 그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지도 않으며, ‘사람은 모름지기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문약(文弱)하면 인정받을 수 없기에 초등교육에서부터 ‘체육’은 매우 중요한 교과이다. 해서, 한발자전거를 익히고,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을 돌며, 초등학교 6년 내내 수영을 배워야 하는 ‘운동의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조직폭력배도 배워야 하기에 영화 ‘두사부일체’의 서열 2위 조폭(정준호 분)마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공부의 나라’다.

붓보다 칼을 숭상하는 사무라이 문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을 통일한 17세기 이후 더욱 꽃을 피워 나중에는 무신만도 수십개의 계급으로 세분화된다. 이에 따라 18세기에 이르면 지배계급은 쇼군으로 잘 알려진 대장군에서 대영주와 소영주, 상급·중급·하급 무사에 이르기까지 수십개로 정교하게 나누어 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배계층이어도 한번 하급 무사는 영원히 하급 무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신분제의 특징이었다는 점. 칼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과거(科擧) 제도가 필요 없으니, 신분 상승할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인구 1000만명도 채 되지 않던 조선에서는 출세를 꿈꾸며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유생 수만 10만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지금의 사시, 고시 열풍은 이미 오랜 전통이 있는 셈이다.

정해진 위치와 계급 안에서 빼도 박도 못하며 평생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이 일본인이다. ‘열심히’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일본어 ‘잇쇼켄메이(一所懸命)’는 자신의 집과 재산을 목숨 바쳐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평생 그 자리에 달라붙어 자신의 터를 보존해야 하는 고착(固着)의 슬픈 뜻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한국의 문신정치와 일본의 무신정치는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 이란과 이라크, 그리스와 터키를 뛰어넘는 ‘가깝고도 먼 나라’를 만들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다음에는 붓 아닌 칼로 다스렸기에 부딪혀야만 했던 통치계급의 한계가 피지배층에게 어떤 비극을 강요했으며 열도의 백성들을 어떻게 피눈물나게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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