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남일(53·사진)씨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문학동네)을 펴냈다. 인간이 아닌 토끼의 얼굴로 태어난 기구한 인물 차상문을 소재로 활달한 상상력을 펼쳐내면서 “인간 영장류가 끌고 온 문명의 역사에 대해 ‘근본적인 동시에 급진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남미의 작가 마르케스나 이사벨 아옌데가 보여준 매직 리얼리즘을 한국판으로 제대로 소화해낸 데 그 미덕이 있다. 현실은 환상처럼, 환상은 현실처럼 묘사하면서도 풍자와 비판의 칼날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김씨는 이 부분에 대해 동의했다.
“쓸 때 당시는 크게 염두에 안 두었는데 워낙 내가 마르케스나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매직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요. 지금까지 내 스타일이 경직돼 있었는데 세상에 대해 화려하게 쓰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블랙코미디죠. 코미디지만 슬퍼야 하는….”
그는 단순히 반문명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끈끈한 역사와 가난한 사람의 희망을 이 소설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김씨는 토끼인간 차상문의 입을 빌려 “제발 쿵쿵거리며 걷지 말라”고 당부하고 경고한다. 주변부에 대해 배려할 기회를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져보자는 통절한 호소다.
“인간에 대한 혐오나 문명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지는 생태 파시즘 소설은 결코 아닙니다. 그걸 방지하려고, 지금 상태의 직선적 발전이 이루어지면 반대의 극단적인 유나바머 같은 생태 파시스트가 나타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한 겁니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파괴도 막아야 합니다.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을 공격할 때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파괴될 것도 없다고 했지만, 그 사막에도 역사와 꿈과 기억이 있습니다. 단순한 반문명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의는 아닙니다.”
그는 유나바머 사건 때 300장 써놓았다가 포기한 채 10년 넘게 기다리다가 재작년에 토끼를 소재로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이라는 콩트를 쓴 뒤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넘치게 찾아와 이 소설에 발동을 걸었다고 했다. 지난해 1월 이 소설을 탈고한 뒤 1년 내내 다시 고쳐 이 흥미로운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그는 작가의 말에 토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썼다.
“그래, 본때를 보이는 거야. 유한한 화석 에너지를 터무니없이 낭비하는 인간들! 육식이든 초식이든 생명을 섭취해야만 존재가 유지되는 인간들! …그러고도 꾸역꾸역 종의 번식을 시도하는 인간들!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 아버지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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