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민간교류 활성화를 일본의 극우 성향 일간지인 산케이신문의 서울특파원인 구로다 가쓰히로가 최근 신문칼럼에서 비빔밥에 대해 혹평한 것이 한국 내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한국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비빔밥에 대해 ‘양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를 판다’는 뜻의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까지 동원해가며 깎아내린 데 대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화가 치밀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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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도쿄 특파원 |
구로다는 30년 동안 한국에서 머물고 있다 보니 최근 일본 내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본의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의 푸드코트나 레스토랑가에는 비빔밥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는 한식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도쿄의 대표적인 쇼핑 관광명소인 인공섬 ‘오다이바’의 한 대형 쇼핑몰 푸드코트에는 ‘전주비빔밥집’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은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간편하면서도 맛과 영양을 갖춘 웰빙음식이라서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런 비빔밥 인기는 한식점이 체인화되면서 일본 전국으로 점점 더 뻗어나가는 추세이다.
따라서 구로다의 발언에 한국인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구로다의 비빔밥 폄하 칼럼은 일본에선 거의 반향이 없다. 오히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 수난당하는 ‘양심적 일본 언론인’ 으로 비쳐지길 바라는 구로다를 도와주는 일이 될지 모른다.
사실 일본 극우 매체들의 반한 선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점에 가면 쉽게 접하는 격주간지 ‘사피오’는 최근에도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들의 테러 책동 때문이며 사망자 수도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는 주장을 버젓이 싣고 있다. 산케이는 ‘대마도가 위험하다’는 연재기사를 통해 한국인들이 대마도를 빼앗기 위해 조직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일본 사회 속에서 터져나오는 이런 주장들에 일일이 정색을 하며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본 사회에서 극우 매체들의 반한 선동은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큰 틀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 중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3.1%로 1978년 조사를 개시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중국에 대해 58.5%가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다.
한국에 대해 이런 우호적 흐름이 형성되는 데는 무엇보다 한일 간 민간 차원의 교류 활성화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사상 처음으로 300만명을 넘어 305만명을 기록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도 약 170만명에 이른다. 근 5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현해탄을 오간 셈이며, 앞으로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일본에선 한류문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웬만한 규모의 행사로는 객석을 다 채우기 어려울 정도로 큰 도쿄돔이 한국 연예스타들의 행사에는 매번 만원사례를 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음식, 노래가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로다가 30년 한국 체류 경험을 내세워 아무리 비빔밥을 폄하해도 실제로 인사동을 비롯해 한국의 관광 명소 식당에서 비빔밥을 찾는 일본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극우 매체의 선동기사로만 한국을 접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경인년 올해는 한일 강제합병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지평을 열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아직 국가 대 국가로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양국 간 민간교류가 한층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진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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