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 사람의 삶] 교도관 출신 첫 교정국장 지낸 이순길 교정동우회장

입력 : 2009-11-16 16:15:01 수정 : 2009-11-16 16:15:0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교도관은 ‘사회를 위해 봉사 한다’는 철학 지녀야 ”
김재규 등 비극적 말로 보며 인생무상 느껴
다양한 에피소드 담은 ‘교도소 사람들’ 출간도
◇교도관 출신 첫 법무부 교정국장(현 교정본부장)을 지낸 이순길(67) 교정동우회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동 교정동우회 사무실에서 교정행정 30년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교도관은 수형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사회로 돌아가 제2의 삶을 온전히 가꿀 수 있도록 돕는 데 보람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교도관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살기 어렵던 1960년대 군대에서 갓 제대해 취직이 최우선인 그에게 7급 공무원은 매력적인 일자리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교도관 제복을 입은 청년은 꼭 30년 뒤 우리나라 교정행정을 지휘하는 법무부 교정국장(현 교정본부장)에 오른다. 교도관 출신 첫 교정행정 총수라는 영예도 함께 얻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동 교정동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순길(67) 교정동우회장은 “왜 교도관이 됐느냐”는 첫 질문에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재소자들에 대한 측은심,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교도관이 된 건 아닙니다. 그냥 법무부의 한 직원으로 알고 시험을 친 거죠. 고등고시 공부를 하다가 안 돼서 군대를 남들보다 3∼4년 늦게 갔다왔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직장을 다시 바꾸진 못한다, 평생 여기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신임 교도관 교육은 아주 엄격했다. 오늘날 법무연수원의 전신인 국립교도관학교가 당시 서울 서대문 부근에 있었는데, 거기서 4개월 동안 전문 교관들한테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교도관들의 위계질서는 군대나 경찰 못지않았다. 연수를 마치고 일선 교정시설에 배치되니 당장 열악한 근무환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정시설은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늘 맨끝이죠. 사람들이 흔히 ‘없어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울구치소만 해도 87년 처음 지었을 때는 훌륭했지만 지금 보면 형편없어요. 그런데 안양교도소, 영등포교도소 같은 곳은 더 낙후됐단 말입니다. 한때 교도관이 전국 공무원 중 이직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정말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철학이 없으면 교도관 일을 못 합니다.”

그는 일찌감치 한 우물을 파기로 작정했다. 이리저리 옮겨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 지은 나쁜 사람을 뉘우치게 만들어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직업 특성상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들의 비극적 말로를 지켜보며 ‘인생무상’도 느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80년 5월24일 교수형 집행을 앞두고 처음엔 의연해하더니 사형장 10여m 앞에 서자 갑자기 의식을 잃어 교도관들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장 시절인 96∼97년엔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노태우 대통령을 ‘관리’하는 처지가 됐다. 30년 교도관 생활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는 2003년 출간한 책 ‘교도소 사람들’에 잘 녹아 있다.

법무부 교정국장 자리는 48년 정부수립 이래 줄곧 검사들이 독점해 왔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찰의 견제 속에서 어떻게 교도관 출신이 교정국장에 오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80년대 초반 어느 날 전두환 대통령이 서울구치소를 불시에 방문했어요. 그분이 소장실 탁자 유리판 밑에 깔린 법무부 조직도를 보다가 교정국장, 출입국관리국장(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자리에 ‘검사장 아무개’라고 적힌 걸 보더니 ‘왜 검사가 이런 직책을 맡고 있냐’고 물었답니다. 당황한 법무부에선 부랴부랴 출입국관리국장을 일반직으로 전환했는데, 교정국장만큼은 ‘당분간’ 검사가 계속 맡아야 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대요.”

‘당분간’이라고 한 게 노태우, 김영삼 정부를 거쳐 15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다. 법무부 인력,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교정국을 검사들이 절대 놓지 않으려 한 탓이다. 교정국장에 교도관이 임명되면 차관급 검사장 자리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당신이 4년 넘게 교도소 수감생활을 해서 그런지 교도관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어요. 취임 후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도관 사기 진작을 위해 교정국장을 교정직에 넘기라고 지시했죠. 검사들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어 김태정 장관 시절인 99년 결국 제가 법무부 교정국장에 임명됐습니다.”

그가 국장일 때 전국의 교도관은 1만3000여명, 경비교도대원은 6000∼7000명쯤 됐다고 한다. 여기에 수용 중인 재소자까지 더하면 무려 10만명에 이르는 ‘대식구’를 인솔한 셈이다. 방대한 조직의 어느 부분에서 언제 갑자기 사고가 터질지 몰라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2년간 무리 없이 교정국을 이끈 그는 2001년 6월 정년을 한 해 앞두고 명예퇴직하는 길을 택해 또 한 번 관가의 화제가 됐다.

“일을 하는데 1년은 부족하고 2년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있으면 후배들한테 과욕으로 비칠 소지가 있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후배도 해야 하지 않느냐, 또 공무원은 진퇴 시기를 분명히 해야지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임기는 없지만 저를 시작으로 교정국장은 2년씩 하고 물러나는 게 관행이 됐습니다.”

최근 들어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 집행 재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30년 교도관 생활 동안 사형 집행 현장에 직접 입회해 본 건 딱 한 번이다.

60년대 대표적 간첩단 사건인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질락이 72년 7월15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곁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요즘 벌어지는 사형제도 존폐 논란에 그는 할 말이 아주 많다.

“왜 사람들은 가해자 인권만 생각할까요. 유영철이 20여명을 살해했는데 그럼 그 피해자나 가족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나요. 연쇄살인범은 붙잡히면 사형당할 줄 뻔히 알면서 이를 무릅쓰고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자기 생명권을 스스로 포기한 거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인권을 존중받길 거부하는데 왜 그런 자의 인권을 국가가 나서 보호해야 합니까.”

사형제를 ‘종신형’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많으나 그는 단호히 반대한다. 종신형 제도가 도입돼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기징역처럼 감형이나 가석방 적용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럼 지금 있는 무기징역과 종신형이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그는 사형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산 흉악범 위주로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예전에 어느 사형수는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교도소 안에서 사람을 죽이면 재판을 받는데, 대법원까지 가려면 2∼3년 걸리니 그동안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며 다른 재소자를 살해한 적이 있어요. 사형수는 인생 마지막이라 교도소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봅니다. 교도관이 제재도 못해요. 사형수 한 명 지도하는 게 일반 재소자 100명, 아니 1000명보다 힘듭니다.”

공직을 떠난 뒤 동국대 겸임교수로 잠시 교편을 잡았던 그는 2006년 눈의 망막에 생긴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 연구, 강의 등 모든 활동을 접었다.

두 아들이 결혼해 분가하면서 부부끼리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교도관 시절 늘 그를 옥죈 긴장의 끈을 놓은 채 여유로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공직에 있으며 시골 어른들한테 죄를 지었습니다. 추석에도, 심지어 아버지 제사 때에도 집에 못 갔으니까요. 집안에서 완전히 ‘상놈’ 소리를 들었죠. 퇴직 후엔 제사도 꼬박꼬박 챙기고, 친척들 경조사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씩도 고향에 갑니다. 저는 평생 문화생활이라는 걸 못해 봤습니다. 공무상 출장 기회가 생겨도 바빠서 아랫사람을 대신 보냈죠. 요즘은 집사람한테 미안해 함께 해외에도 나가고 국내여행도 다녀오고 그럽니다, 허허.”

글 김태훈, 사진 이제원 기자 af103@segye.com

■ 약 력

▲1942년 경남 밀양 출생 ▲밀양농잠고, 성균관대 법대 졸업 ▲7급 교도관 시험 합격(69년) ▲강릉교도소장 ▲서울구치소장 ▲법무부 교정국장 ▲동국대 법학박사(99년) ▲경기대·한양대·성균관대 강사, 동국대 겸임교수 ▲교정동우회장(2008년 4월∼현재) ▲‘교정학’(94년·공저), ‘형사정책학’(99년·공저), ‘교정환경의 변화와 미래대응 전략’(2001년), ‘교도소 사람들’(2003년) 외 저서·논문 다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유선, 당당한 미소
  • 유선, 당당한 미소
  • 유리 '눈부신 미모'
  • 라임라잇 이토 미유 '신비한 매력'
  • 김소은 '깜찍한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