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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탐구생활… 딱 내 얘기네”

입력 : 2009-09-30 10:39:29 수정 : 2009-09-30 1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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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보고 손 안씻고… 남자앞서 내숭떨고… 은밀한 이성의 사생활 리얼버라이어티와 공개 코미디가 점령한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일침을 가한 케이블 프로그램이 인기 몰이 중이다.

◇‘점심시간’ 남자편은 당구장에서 급하게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운 남자들이 점심을 같이 하자는 상사를 거절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점심을 두 번 먹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tvN 제공
tvN ‘롤러코스터’(이하 롤코) 속 코너 ‘남녀탐구생활’이 그 주인공. ‘남녀탐구생활’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듯, 같은 상황에 처한 남녀의 전혀 다른 대처법을 보여주는 비공개 코미디다. 톱스타도, 현란한 자막도, 오버 액션도, 하물며 대사도 없다. 오직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하는 무미건조한 성우의 내레이션만 입혔을 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은밀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걸 알고는 무릎을 치며 웃고, 몰랐던 이성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기겁하기도 한다.

‘롤코’는 방송 9회 만에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고, 인터넷에서는 ‘남녀탐구생활’ 특유의 내레이션을 흉내낸 댓글이 유행하고 있다. ‘남녀탐구생활’의 인기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29일 서울 상암동 tvN 본사에서 제작진을 만나봤다.

◇군대 간 남자와,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국군의 날 특집’(26일 방송)은 ‘롤러코스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 공감대, 그리고 이성의 발견


‘남녀탐구생활’을 보며 대체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다. 남녀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날카롭고 세밀한 묘사도 그렇거니와 재기발랄한 내레이션을 들으며 작가들의 내공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남녀탐구생활’의 남자편을 담당하는 김기호(34·이하 ‘남 작가’) 작가는 MBC 시트콤 ‘연인들’ ‘논스톱’(시즌3, 5) ‘프란체스카 3’ ‘김치치즈스마일’ 등을 쓴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여자편의 김지수(27·이하 ‘여 작가’) 작가는 KBS 시트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SBS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 OCN ‘기방시리즈’ 등을 거쳤다.

◇‘방귀 트기’ 남자편은 여자친구 앞에서 방귀를 뀐 후 장난과 애교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남자들의 행동으로 큰 웃음을 줬다.
여 작가는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에 대해 잡담하다가 한 남자 스태프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손을 안 씻는다고 하자 여자들이 경악했고, 여자들이 변기에 앉는 게 찜찜해 기마자세로 볼 일을 본다는 걸 듣고 남자들도 놀랐다”면서 “화장실처럼 남녀가 서로 보지 못한 공간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디테일하게 보여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남 작가는 “몸 개그를 하지 않는데도 많이들 웃는 건 ‘나도 저래봤어’, ‘나만 그러는게 아니구나’ 하며 공감하고 한편으론 예상치 못한 이성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대한 놀라움과 충격 때문인 것 같다”면서 “회의 때 남녀 스태프가 제일 많이 싸우고 말이 많은 방송분이 결국 제일 재밌다”고 말했다.

남녀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자 인터뷰 내내 티격태격하던 남녀 작가는 “차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인종이라고 생각한다”며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 다큐에 코미디 접목, 리얼과 오버의 경계


제작진은 목욕탕, 화장실, 인터넷, 소개팅 준비 등의 상황에서 남녀의 다른 행태를 보여주며 ‘동물의 왕국’처럼 특이한 행동을 다큐처럼 읽어주는 내레이션을 덧입히기로 했다.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 시니컬한 목소리를 찾았고 그래서 낙점된 주인공이 미국 드라마 ‘X파일’의 스컬리 역으로 유명한 성우 서혜정씨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소개팅에 나간 여자가 남자를 처음 보고 실망하는 대목에서 서혜정 성우의 ‘아, 쓰바… 별로예요’라는 내레이션은 압권이었다. 지적인 여성의 대명사였던 스컬리의 목소리로 간혹 ‘이런 젠장’, ‘아, 쓰바’ 등의 대사가 튀어나올 때의 아이러니는 ‘남녀탐구생활’의 웃음 기폭제 중 하나다.

이성수 PD는 “대본에 대사는 없고 지문만 있기 때문에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고 애드리브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연기도 되면서 개그감이 있어 현실과 오버의 경계에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정형돈, 정가은씨를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게으른 남성의 표본을 보여준 정형돈은 술 좋아하고 쇼핑을 싫어하며 무신경하고 무심한 남자의 심리와 행동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8등신 송혜교’로 유명한 정가은은 여자라면 어느 정도 있는 허영심을 보여주고, 남자 앞에서 내숭을 떨면서도 화장실 기마자세를 하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사 없이 연기만 하다 보니 촬영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썰렁하다. 그래서 촬영 초반 연기자들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남녀탐구생활’ 제작진이 뽑은 명대사 베스트 5
●곰신(고무신) 카페 ‘강추 면회 코디법’대로 플레어스커트에 ‘청순가련 부끄부끄’ 메이크업을 한 채 부대로 향해요.(국군의 날 특집 여자편-군대 간 남자친구의 면회를 가는 장면)
●완벽한 블라우스에 어울리는 완벽한 스커트를 찾을 때까지 돌아봐요. 백화점은 원래 백 바퀴를 돌아서 백화점이니까요. (쇼핑 여자편-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는 장면)
●그러자 언니는 니가 옛날에 내 옷 입은 것과 똔똔 아니냐며 적반하장식 대응으로 나와요. 오래 살아서 그런지 말도 드럽게 잘해요.(자매싸움 편-언니에게 따지지만 말싸움에서 밀리는 장면)
●여친과 헤어져 귀가한 남자는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하의를 탈의한 후 의자에 앉아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잡아요. 팬티만 입어야 엉덩이에 땀이 차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부팅이 될 때까지 한 손으로 코를 파고, 한 손으론 마우스로 모니터에 네모를 만들어 대요.(인터넷사용 남자편-컴퓨터 부팅 장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어야 뭔가 잘나가는 직장여성이자 현대여성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져요. (직장인 점심시간 여자편 -식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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