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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 어디에서 나왔나요?”

입력 : 2009-08-25 16:33:53 수정 : 2009-08-25 16: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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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麗水). 여수는 ‘아름다운 물’ 혹은 ‘아름다운 바다’로 풀이된다. 지명에서 이미 다른 도시를 주눅 들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그리고 여수 시민들은 여수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할까. 여수에 관한 설명은 숱하다. 그 중 하나는 아무래도 ‘돈 자랑하지 말라’는 것과 연관된 말이 아닐까.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

꽤 오랫동안 남도 지방에서 전해지던 말이다. 이제는 타지 사람들도 이 표현을 알아듣거나 사용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런 표현이 있다. “언제부턴가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조정래 선생은 2005년 1월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이 말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조금은 길지만, 남도의 환경과 그곳의 정서를 아는 이들은 쉽게 이해할 만한 설명이었다. 먼저, ‘벌교’와 ‘주먹’을 연결해 풀이했다.

“벌교는 오래전부터 보성과 순천, 승주와 고흥을 잇는 도로가 있었지. 여기에다가 철도역이 있는 교통 요충지였어요. 지금은 약간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역전에는 인근에서 ‘주먹’ 좀 쓴다는 이들이 모이잖아. 왈패들 말이야. 여기에다가 조선인들이 일본인과 주먹 싸움에서 거세게 저항하면서 벌교 사람들의 매서움이 알려졌지. 나중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본과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할거에요.”

다음은 ‘순천’과 ‘인물’.

“이에 비해 순천에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했어. 얼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을 기준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거에요. 순천에는 오래전부터 고흥, 구례, 보성 등 전남 동부 6군의 인재들이 모였던 곳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바로 실력을 겸비한 ‘인물’을 말하는 거에요.”

마지막으로 ‘여수’와 ‘돈’에 관한 설명이었다.

“여수는 좀 더 명확하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촌이 농촌이나 산촌보다는 잘 살 거에요. 배 한 척 있으면 예나 지금이나 부자이잖아.”

더 많은 지역의 특색을 설명하는 글도 있다. 소설가 김주영의 작품 ‘아라리 난장’에는 더욱 더 자세히 나온다. “순천 가서 인물자랑 말고, 여수 가서 돈자랑 말고, 벌교 가서 주먹자랑 말고, 진도 가서 글씨자랑 말고, 강진 가서 양반자랑 말고, 고흥 가서 노래자랑 말라”는 구절이 있다.

여하튼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이 말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생선이 지천으로 깔리고 부두로 나가면 밥은 굶지 않은 도시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는 70대 여수 시민의 설명이 있었지만, 연원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여수시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수’와 ‘돈 자랑’을 연결하는 고리에는 개항이 있다. 조선이 부산항을 시작으로 원산, 인천을 개항한 것은 1876년 강화도 불평등조약에 따라서다. 여수항은 지정항으로 된 때는 1918년. 이어 1930년 전라선이 개통돼 여수와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드나들게 됐다. 일본의 영세 어민들도 본격 이주했다.

일본에서도 여수는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일본인의 거주지가 생겼다. 이어 일본인만 다니는 학교(동초등학교)도 개교했다. 오동도 주변에 방파제가 생기는 등 여수의 해상 환경은 크게 좋아진다. 많은 경우가 일본 제국주의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여수의 남해안 해상교통의 주축 고장으로 성장한다. 고깃배가 수시로 드나들고, 15번에 걸친 매립으로 공사장 인부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목돈을 쥔 선원들이 여수 곳곳에서 ‘돈’을 풀어놓았다. ‘자본’과 ‘사람’이 여수로 몰리게 된 것이다.

광복 이후 개발시대에는 MBC 라디오의 ‘안개 낀 여수항’ 프로그램에서 보듯, 밀수 등 부정적 이미지에서 여수를 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70∼90년대를 거치면서 여천 중화학공업단지와 광양제철 등의 등장으로 여수는 다시 발전의 흐름을 탔다.

그런데 이제 여수가 돈 자랑할 정도는 아니다. 꽤 오래 여수 경제는 침체해 있었다. 여수반도는 여수항 일대의 여수시와 나머지가 여천군으로 분리됐다. 다시 산업단지 쪽이 여천시로 분리됐다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 도시통합을 이뤘다.

그 덕택으로 인구 34만 명의 전남 지역 최대의 도시로 기틀을 다졌다. 여기에다가 2012년 여수엑스포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요사이 여수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더 늘고 있다. ‘돈’만으로 여수를 설명한다면, 그건 여수나 여수 시민들에게 크게 실례되는 말이다. 여수는 사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오죽했으면 지명에 ‘아름답다’는 한자어를 집어넣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수차례 여수를 찾았지만 여수는 갈 때마다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안타까움은 있다. 인구 30만이 넘는 전국의 여러 도시 중 여수는 유일하게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없는 도시다. 아름다운 해상의 도시로 가는 길이 멀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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