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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 복원과는 달라”

입력 : 2009-04-30 18:26:24 수정 : 2009-04-30 18: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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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동 스캔들’ 참여 복원전문가 차병갑씨
◇영화 ‘인사동 스캔들’ 자문에 참여한 차병갑씨가 배우 김래원에게 가르쳤던 연습용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팀 한국화 담당 차병갑(56)씨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복원전문가다. 그는 “피곤에 지쳐 있는 미술품을 정성껏 어루만져 후세에 잘 전하는 것이 임무”라고 자신의 일을 소개했다.

차씨는 16세 때 처음 인사동에 들어가 20년간 복원 기술을 터득했다. 이후 1987년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기면서 미술관에 들어가 또다시 20년을 보냈다. 미술관 안과 밖을 절반씩 모두 경험한 셈이다.

특히 차씨는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최고의 복원전문가 이강준 역을 맡은 배우 김래원을 직접 지도해 화제를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수복실을 찾아 차씨로부터 영화 속 미술품 복원의 생생한 이야기와 40년 복원 외길에 대해 들어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주인공 이강준(김래원)은 파리 제3대학 최초의 동양인 복원가이자 신의 손을 가진 복제 기술자로 나온다. 그는 400년 만에 발견된 조선전기 화가 안견의 ‘벽안도’를 복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강준은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물감을 구해다 쓰고 훼손된 부분을 직접 그려 넣기도 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복원이란 종이의 불순물을 제거해 그림 색을 선명히 하고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뒷면을 새로 배접하는 것을 말한다. 떨어져 나간 부분을 비슷한 종이로 잇댈 수는 있지만 흐릿하거나 없어진 부분을 새로 그려넣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이강준이 추운 겨울 산에 올라 맑은 계곡물에 종이를 씻어내자 종이 속 먹이 사르르 지워진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없다. 차씨는 실제 고서류 종이를 물에 씻어 시범을 보였다. 종이는 빨랫감처럼 젖었지만 찢어지지도 않고 종이에 적힌 먹글씨도 지워지지 않았다. 종이를 물에 씻는 ‘세초’는 이물질만 제거될 뿐이다. 젖은 종이를 계속 문지르고 두들겨야 종이가 분해되면서 글씨도 사라지게 된다. 차씨는 또 한지를 찢었다가 물을 묻힌 뒤 손가락으로 눌러 종이를 감쪽같이 붙여냈다.

“이처럼 지류문화재 보존처리는 물, 종이, 풀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이를 가지고 머릿속에서 나온 경험과 접목시키면 되죠.”

또 영화에서 사라진 그림을 나타나게 한다는 신비의 물 ‘회음수’도 영화적 허구다. 차씨는 “영화 속 ‘벽안도’ 복제 장면은 영화적으로 신비스럽게 포장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이강준이 몇백년 된 ‘벽안도’를 복제하기 위해 수십년간 쌓인 먼지를 활용하는 것처럼 차씨 역시 ‘먼지’라고 쓰여 있는 통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98년 옹기로 된 작품을 작업하면서 수집한 것”이라며 “언젠가 쓰게 될지 몰라서 보관해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씨는 이 밖에도 구겨진 옛 종이와 무덤 속 망자의 옷 등을 검은 봉지에 담아 ‘내 보물’이라며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복원하는 데 쓸 데가 있을 것”이라며 “예를 들어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작품이 있으면 비슷한 종이를 찾아 덧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이에서 먼지를 씻어내는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차병갑씨.
◆복원과 복제를 가르는 것은 ‘양심’=
영화 속 이강준은 대외적으로는 최고의 복원전문가이지만 동시에 복제전문가이기도 하다. 훼손된 작품을 고치고 살려내는 작업에서 복원과 복제의 기준은 뭘까. 차씨는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은 작품의 손상을 막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형태를 변형시키거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건 장사하는 사람들의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건 고쳐서 오래 갈 수 있도록 해야지요.”

인사동에서 대를 이어 20년간 복원 기술을 익힌 차씨는 “주변에서 작품을 복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좋은 기술이 있으면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도 힘들게 산다”고 말했다.

“처음엔 장난삼아 가짜를 만들었다가도 그 작품이 나도 모르게 유통되기도 하고, 고가에 팔리기도 하면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몰락한 사람들을 여럿 봤습니다. 순간의 욕망과 쾌락으로 4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내기 싫습니다. 문화재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걸고 결코 위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고달프지만 문화재를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게 제 희망입니다.”

글·사진=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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