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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서] 청구회 추억-고승덕 한나라당 국회의원

입력 : 2009-03-13 18:11:58 수정 : 2009-03-13 18: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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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한나라당 국회의원
기분 좋은 꿈을 꾸면서 푹 잔 후에 산뜻하게 일어난 기분이랄까. 아니면 나의 찌든 영혼에 순수한 산소를 주입받은 듯한 느낌이랄까.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청구회 추억’(신영복 지음, 김세현 그림, 조병은 영역, 돌베개)을 읽은 후 난 잠시 참 행복했고, 착해진 것 같았다. 나에게도 먼 훗날 이처럼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만남과 추억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저자 신영복 선생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 그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의 저자이며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하셨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 저자의 인격의 깊이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되었음도 고백한다.

1966년 이른 봄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 소풍길. 신참 대학강사였던 저자는 대학생들과 함께 봄소풍을 가면서 코흘리개 초등학생 6명과 우연히 만난다. 행색은 남루해도 발랄하고 귀여운 꼬마들에게 저자는 관심을 표하고, 아이들은 대학생들과의 씨름에서 이긴 저자에게 환호하면서 서로 통성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연락을 하기로 약속하며 주소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어른들이 늘 그렇듯이 까맣게 잊은 저자와 달리 얼마 후 대학 연구실로 꼬마들 중 한 사람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낸다. 연락을 기다렸는데, 왜 연락을 주지 않느냐는 원망과 기대가 담긴 편지였다.

이에 저자는 크게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당장 엽서를 보내 토요일 오후에 만날 약속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아이들과 매주 토요일 만나 아이들이 사는 동네인 청구동의 이름을 따 ‘청구회’를 조직한다.

아이들은 이 모임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 듯하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야 좋은 책을 골라 읽어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지만, 아이들은 약속시간 훨씬 전부터 와서 기다리기 일쑤였다.

선생이 가장 잊지 못하는 일은 그 다음해 2월 저자가 담낭 절제 수술을 받느라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했을 때이다. 미리 엽서로 그달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고 알리고 절대 문병을 오지 않도록 부탁했는데, 다음 달 모임에 나간 그는 아이들이 두 번이나 병원에 찾아왔다가 위병소에서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봄소풍 때도 싸오지 못한 삶은 달걀까지 소중히 싸가지고 왔었으며, 그중 가장 나이 어린 꼬마는 혼자서도 한 번 왔었다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모임은 2년여 동안 지속하다가 저자가 감옥에 갇히면서 중단된다. 그는 수사관에게서 이 ‘청구회’에 대해 취조당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까지 겪게 된다. 수감 생활 중 그는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소위 ‘똥종이’와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 빌린 볼펜으로 이 이야기를 깨알같이 적었다고 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적는 동안 그는 잠시나마 감옥의 억압에서 풀려 추억의 날개를 타고 잠시 소풍을 떠났을 거라 생각한다.

벌써 봄이다. 나도 이 책을 들고 봄이 오는 서오릉 길을 산책해볼까 싶다.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추억도 회상할 테다.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고, 무슨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했으며, 또 얼마나 많이 기약 없는 이별을 반복한 것일까.

고승덕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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