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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의 느린방랑]유목민 게르에서 보낸 1박2일

“떠나는 길 우윳빛처럼 밝길…”
야크젖 바가지로 뿌리며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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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26 17:44:34      수정 : 2009-02-26 17:44:34
◇호숫가 주변을 느리게 배회하는 야크떼가 홉스골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잔뜩 그려내고 있다.
나와 알타이까지 동행한 ‘델리카’(승합차)의 운전기사 이름은 덥친(55)이다. 덥친의 고향은 항가이 산맥 북서쪽, ‘이크올’이란 곳으로 몽골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힌다. 항가이 산맥 솔롱고(무지개라는 뜻, 해발 3000m) 고갯마루에 이르자 운전기사는 차를 세우고 어버(서낭당)에 푸른 하닥(신에게 바치는 천)을 걸며 고향에 왔음을 알린다. 그는 울란바토르에 살면서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5년 동안이나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항가이 산맥 북쪽 루트를 통해 알타이에 가겠다는 ‘나’의 주문으로 그는 5년 만에 다시 고향땅을 밟게 되었다.

고향에 도착한 다음부터 운전기사의 얼굴은 언제나 생기가 넘쳤다. 이데르 강(바이칼 호수로 흘러간다)이 흐르는 이크올에 도착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동생이 벌써 길가에 마중을 나와 있다. 게르가 아니라 시멘트로 대충 지은 동생의 집. 주인장은 처음 보는 우리에게도 코담배를 권하며 손님 대접을 한다. 몽골에서는 코담배를 받았을 때 코에 대고 향기를 맡은 다음, 오른손으로 전해주는 것이 예의다. 안주인은 수테차(우유소금차)를 내오고, 주전부리도 잔뜩 내온다. 사실 오늘 저녁에 묵을 집은 덥친의 막내 동생네 집이다. 막내 동생은 이크올에서도 10㎞가 떨어진 산중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은 가는 길에 잠시 인사차 들른 것이다.

저녁이 다 돼 막내 동생의 게르에 도착했다. 막내 동생의 이름은 뭉크바트(37). 아이들이 3명 있지만, 2명은 학교에 다니느라 이크올 형의 집에 가 있고, 막내 딸 게렐치멕(7)만 게르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보통 몽골의 유목민은 1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한 번씩 네 번 이사를 한다. 지금 뭉크바트 씨가 사는 곳은 봄 게르라고 한다. 양과 염소, 야크와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은 철 따라 초원을 이동함으로써 부족한 가축의 먹이를 해결한다. “가축이 몇 마리나 됩니까?” “양과 염소가 200여마리쯤 됩니다.” 야크도 30여마리 된다.

유목민의 ‘부의 척도’는 가축의 수에 달려 있다. 양과 염소가 1000마리가 넘을 경우 몽골정부에서는 상장까지 수여하며 격려한다. 저녁이 늦어 뭉크바트 씨의 게르에는 이크올과 인근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4명의 동생이 빙 둘러앉았다. 5년 만의 가족상봉. 오랜만에 다함께 모인 동생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덕분에 이렇게 5년 만에 형을 보게 되어 너무 고맙습니다.” 바로 옆 게르에서 온 게렐치멕의 사촌 브룸바트라(7)도 처음 보는 한국 손님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녀석은 일행의 카메라를 빌려가 찍기도 하고, 실뜨기를 하자며 자꾸 일행을 졸라댔다.

◇몽골의 오지마을에 사는 덥친과 그의 가족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운전기사 덥친의 남매들은 옆 게르로 자리를 옮겨 회포를 풀고 나는 이쪽 게르에 남아 잠자리에 든다. 타닥타닥 난로에서는 장작 타는 소리 들려오고, 게르는 따뜻하게 온기가 돌아 어느새 까무룩 나는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에 난로가 꺼지자 살을 에는 북방의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저절로 잠이 깨어 한동안 뒤척거리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희뿌연 새벽 빛이 골짜기에 가득하다. 밤새 조용하던 양떼들은 시끄럽게 ‘음매’거리기 시작한다.

과거 우리나라에 보릿고개란 말이 있었던 것처럼 몽골에는 ‘젖고개’라는 말이 있다. 이른 봄 가축들이 새끼를 낳는 철을 일컫는다. 이때 새끼를 낳은 가축은 잘 나오지도 않는 젖을 새끼에게 물려야 하므로 사람이 먹을 젖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유목민들은 아무 때나 가축을 잡지 않는다. 늦가을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 가축을 잡아 게르에 매달아 놓고 그것을 봄까지 먹는다. 여름에는 가축에서 나오는 유제품으로 고기를 대신한다. 봄에는 가축이 겨우내 먹이가 부족해 바짝 마른 데다 새끼도 낳아야 하므로, 봄에 가축을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른 아침부터 양쪽 게르의 안주인들은 야크젖을 짜느라 바쁘다. 안주인이 밖에서 야크젖을 짜는 동안 게르 안에서는 남자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몽골 최고의 음식으로 불리는 ‘호르혹’이다. 호르혹 요리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물통처럼 생긴 둥그런 철통 안에 물을 붓고, 난로 속에서 오랜 시간을 달궈 벌겋게 된 뜨거운 돌을 통안에 넣는다. 그리고 달궈진 돌 위에 적당히 자른 양고기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벌겋게 달궈진 돌을 올리는 식으로 한층한층 양고기와 뜨거운 돌을 집어넣은 뒤, 누린내를 없애는 양파를 얹고 소금을 뿌려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김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거의 밀봉에 가깝게 뚜껑을 닫는 일이다.

이것을 다시 난로 위에 올려놓고 한 시간가량 불을 때면 호르혹 요리가 완성된다. 돌을 달구는 것에서부터 통 안에 고기와 돌을 집어넣고 난로에서 한번 더 불을 때주는 것까지 무려 3시간가량 여러 사람 손을 빌려야 호르혹 요리가 완성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호르혹 요리를 앞에 두고 유목민 가족과 한국의 손님이 빙 둘러앉았다. 불에 구운 것 같으면서도 훈제한 듯한 양고기 냄새! 주먹만 한 고기를 하나 집어들고 뜯어먹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양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고 느끼게 한 양고기의 재발견. 누리고 느끼한 맛이 전혀 없는, 유목민 최고의 손맛! 주인네가 권하지 않아도 저절로 손이 간다. 시간과 정성이 깃든 만큼 호르혹 요리의 맛은 그야말로 몽골 음식 최고의 맛이다. 몽골을 다녀간 외국인에게 가장 맛있었던 몽골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십중팔구 호르혹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몽골의 유목민 또한 명절이 아닌 이상 가장 귀한 손님에게만 호르혹 요리를 대접한다. 호르혹을 배불리 먹고 수테차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행복하다.

오랜만에 입에 착 감기는 아침 식사를 하고 덥친의 남매와 게르 가족들은 5년 만의 상봉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함께 온 일행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한 장씩 건네주자 게르 가족은 더없이 좋아하며 서로 가지려고 한다. 나중에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나도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너무 짧았던 1박2일.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운전기사가 동생들과 뭉크바트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차에 시동을 걸자 양쪽 게르 안주인은 우유를 한 바가지씩 떠와 우리가 떠난 길에다 뿌렸다. 이들이 야크젖을 뿌리는 까닭은 가는 길이 우유처럼 하얗고 빛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여행작가

>>몽골 전통의상, 델

몽골의 전통의상은 델(Deel)이라고 부른다. 델은 우리네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처럼 생겼다. 델은 상의와 하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코트나 가운처럼 한 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부스’라고 불리는 허리띠로 묶어 옷의 길이와 폭을 조절한다. 허리띠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헐렁한 옷을 여미어 줌으로써 델의 보온성을 높여주고, 칼이나 장신구, 담배 등을 착용하는 주머니 노릇도 겸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이 허리띠가 멋을 내는 장식과 같아서 비단에 화려하게 수를 놓기도 한다. 델은 계절에 따라 여름과 평상복으로 입는 홑겹 델이 있고, 솜을 누빈 봄가을용 델과 양털이나 낙타털을 덧댄 겨울용 델이 있다.

과거의 델은 소수민족마다 고유한 색상과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으며, 승려나 특수계층의 델이 각기 달랐으나, 공산혁명 이후 델의 고유한 모델은 상당수가 사라지고 말았다. 델은 남녀가 다르지 않지만, 색깔이나 무늬는 당연히 여성의 델이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전통 델을 개량한 패션화된 델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런 델은 축제나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평상복으로는 거의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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