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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기경, 서품前 프러포즈 받아 한때 고민

입력 : 2009-02-20 11:23:51 수정 : 2009-02-20 11: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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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길 안내 어머니가 평생 연인
◇1951년 사제 서품 직후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김수환 추기경’ 하면 으레 군사정부와 싸우던 ‘양심 투사’, 미사를 집례하던 ‘거룩한 성직자’, 서울대교구장 은퇴 후 덕담과 사랑을 베풀던 인자한 ‘혜화동 할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한 구석도 허투가 없어 보인다. 보통학교 5학년을 마친 10대 때 이미 신학교에 입학, 이렇다 할 연애 한 번 못해 본 고지식한 성직자가 아닐까,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그에게도 여인은 있었다. 첫사랑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인의 인도로 사제의 길에 들어섰고, 여인의 청혼을 고심 끝에 거절함으로써 평생 독신을 감내해야 하는 종신서원을 하게 된다. 그의 자서전엔 3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첫 번째 여인은 일본 유학 중 끌려간 학병 시절 소개받은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내 누이동생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그는 완곡하게 사양했다. “지금은 신학생이고, 나중에 신부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추기경은 “팔자를 고칠 뻔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고 회고했다.

두 번째 여인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함께 성직자가 된 친형 김동환 신부(1983년 선종)가 부임해 있던 부산 범일성당에서 만난 여인이다. 성당 부설 고아원에서 일하며 가끔 사제관 잡일을 돕던 여인이 다가온 것. 그녀는 어느 날 “나를 받아줄 수 있겠어요?” 하고 노골적으로 구애했다. 신학대 휴학생 김수환은 “너무 놀라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사제 서품 전이던 그는 “나는 정말 신부가 될 것인가”를 놓고 일생일대의 고민 중일 때였다. 적잖이 흔들렸다. 하지만, “한 여인을 온전히 사랑할 자신이 없었고, 그보다는 많은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이 좋겠다”고 마음을 정리, 유혹을 물리쳤다.

세 번째 여인은 아들을 사제의 길로 안내하고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 준 어머니 서중하 여사다. 사제 서품 3년 후인 1954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 고아가 됐구나,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엄습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세 여인이 모두 떠난 뒤에도 그의 곁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바로 성모 마리아다. 19일 팝페라 테너 임형주(23)씨는 ‘마리아’를 둘러싼 김 추기경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한번은 김 추기경님께 제 음반을 드리고 ‘아베 마리아’를 함께 들었죠. 추기경님은 무수한 ‘아베 마리아’를 들었지만 이렇게 순결하고 깨끗한 ‘아베 마리아’는 처음 들었다며, 성모 마리아를 만난 기분이라고 극찬해 주셨어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성모 마리아여,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베 마리아’ 속 성모 마리아는 김 추기경과 평생을 함께한 여인이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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