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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영어 지상주의’ …“왠지 씁쓸한데”

입력 : 2008-10-06 09:57:20 수정 : 2008-10-06 09: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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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 주연 '울학교이티'와 공효진 주연 '미쓰홍당무'

영화 '울학교이티'에서 체육교사 역을 맡은 김수로(왼쪽)와 '미쓰홍당무'에서 러시아어 교사로 나오는 공효진.

 올해 초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을 그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역시 영어 몰입교육이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으로 촉발된 영어 ‘올인’ 논란은 일선 교사와 학생들의 극렬한 반발 속에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수월성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 속에서 언제든 다시 점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영어 지상주의로 치닫는 최근의 교육 현실을 반영한 2편의 영화가 개봉돼 눈길을 끈다. 박광춘 감독, 김수로 주연의 ‘울학교이티’와 이경미 감독, 공효진·이종혁 주연의 ‘미쓰홍당무’가 그 주인공이다.

 ‘울학교이티’는 치열한 입시 전쟁 속에서 자리가 위태로워진 체육 교사의 비애를 소개한다. 천성근(김수로 분)은 교과목을 체육에서 영어로 변경, 하루 아침에 ‘이티’(English Teacher의 이니셜·영어교사)가 돼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인다. ‘몸짱’ 체육교사가 영어책을 들고 “아임 파인 땡큐 앤쥬!”를 외치는 절박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만든다.

 ‘미쓰홍당무’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공효진 분)의 이야기다. 동료 교사 서 선생(이종혁 분)을 짝사랑하는 양미숙은 “러시아어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당해 영어 교사로 발령 받는다. 러시아어 교사가 자기 전공도 아닌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영화 전개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영화 속 모습들은 철저하게 영어 중심으로 재편돼가는 우리나라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제2외국어 시장의 경우 일본어와 중국어를 뺀 나머지 언어들 -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 은 수요가 거의 없어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게 현실이다.

 모 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기업에 다닌다는 A(여·28)씨는 “학교 교사가 된 대학 동창들 중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전부 영어 또는 일본어로 전공을 바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화 속 천성근 교사나 양미숙 선생의 사연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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