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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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고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1866년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조선인 천주교도 8000여명을 학살했다.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9명이 처형됐다. 병인사옥이다. 화를 면한 리델은 청나라로 탈출해 베이징주재 프랑스 함대사령관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전했다. 보복 원정에 나선 로즈 제독은 함대 7척과 군사 600명을 이끌고 거침없이 강화도를 침략한 뒤 서울근교인 서강까지 진출했다. 그해 11월 프랑스 해군 160명은 정족산성을 공격하려다가 그중 60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손실을 입었다.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사망 1명, 부상 4명에 불과했다. 프랑스군 사기는 크게 떨어졌고, 로즈 사령관은 조선 침공의 무모함을 깨닫고 철군했다.

병인양요는 두 달 만에 끝났지만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귀중도서와 은괴 19상자 등을 약탈당했다. 당시 유럽 열강들은 역사학자들과 동행해 약소국의 문화재 약탈을 일삼았다.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백미라는 조선의궤(儀軌) 296책이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이유다. 의궤는 왕실혼례, 왕의 즉위, 국장(國葬) 등 공식적인 행사의 절차와 내용을 도감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궤 등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 유산이다.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 선물(?)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만을 돌려줬을 뿐이다. 조선의궤 가운데 상당수는 원래의 비단표지가 아닌 상태다. 하지만 어람용으로 정성들여 쓴 글씨와 재질 좋은 종이, 인물의 그림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140여년 전 그들의 벽안으로도 가치가 높게 보였던 모양이다.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조선의궤 등을 돌려받으려는 소송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내년에나 기일이 잡힐 것 같다고 한다. 국내 민간단체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소송을 세계 최초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관심거리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소송비용 전액을 국민들을 상대로 모금해 마련했다. 프랑스 법률 체계상 판결이 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프랑스가 소송을 통해 문화재를 외국에 돌려준 사례가 없다. 고단하고 지루한 법적 투쟁이 될 것은 뻔하다. 국민 모두가 그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줬으면 한다. 문화연대의 건승을 바란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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