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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인권 리포트] '잠재적 범죄자' 선입견, 엽기 사건 때마다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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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17 10:57:56 수정 : 2008-06-17 10: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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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유영철 등은 '정신이상' 아닌 인격장애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러.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냐?” 잔혹하거나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런 편견은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로 1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방화범 김대한(2004년 사망)을 대뜸 ‘정신질환자’로 규정했다. 일부 언론도 동조했다. 하지만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을 뿐이었다. 법원도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의가 밀려들자 보건복지부는 “뇌병변 장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아직도 당시 방화범을 ‘정신질환자’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올해 초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지른 채종기가 붙잡혔을 때 취재진은 “정신병력이 있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경찰의 대답은 “정신 상태는 아주 바르고 양호하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범행을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점이 인정된다”며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계획적인 범행’이나 ‘치밀한 준비’는 정신장애와 양립하기 힘들다.

200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 유영철. 그 역시 지레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훗날 법정에서 공개된 그의 정신감정 결과는 뜻밖이었다. “(유영철에게서) 정신과적 장애는 찾지 못했으며, 판결을 변경할 만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 같은 용어를 심심찮게 접한다. ‘정신’이 아니라 ‘인격’이 문제란 뜻이다. 유영철을 비롯해 안양 초등학생 살해범 정성현,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 보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오모(71)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의 정신감정 결과는 한결같이 ‘멀쩡하다’고 나왔다. 1994년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박한상이나 2005년 경기 연천 전방초소에서 총기를 난사한 김동민도 “정신엔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터무니없는 편견”이라고 일축한다. 유영철, 정성현 등의 정신감정을 맡았던 최상섭 법무부 치료감호소장은 “희한한 범죄만 보면 바로 ‘정신장애’를 떠올리는데, 실제론 ‘반사회적 인격장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범죄수법 연구가)로 유명한 권일용 경찰청 범죄정보지원계 경위는 “정신질환자들이 일으키는 범죄의 특성은 계획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들에겐 치밀한 연쇄범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동우 김포 한별정신병원 진료원장은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범죄율은 정신장애인과 일반인이 서로 비슷하거나 오히려 정신장애인이 약간 낮다”면서 “다만 범행 후 현장에 그냥 남아 검거율이 높다보니 범죄를 자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이상혁·김태훈·양원보·김창길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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