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의 왕’ 을 꿈꾸는 英 보수당의 희망

입력 : 2008-05-30 20:41:56 수정 : 2008-05-30 20:41:5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다문화 도시 런던 새 市長된 ‘괴짜 정치인’ 보리스 존슨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세계의 왕(World king)’이 되는 것이었다. “어림없는 소리 말라”는 주위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호기를 부렸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44세의 나이에 스위스보다 인구가 많은 유럽 최대 도시 런던의 시장이 됐다. ‘세계를 품에 안은 도시’라는 인구 750만여명의 대도시 시정을 관장하는 수장이 됐으니 그 꿈의 일부는 이루어진 셈이다. 지난 4일 영국 지방선거에서 런던 시장에 당선된 보리스 존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존슨 시장은 ‘괴짜’ 정치인이다. 금발 더벅머리를 휘날리며 배낭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국회의원 존슨의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8년을 연임한 노동당 소속 켄 리빙스턴(62) 전 런던 시장을 가볍게 물리치고 시장에 당선된 그는 첫 출근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가죽 배낭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시청에 들어섰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경찰 경호차량이 그를 에스코트했다는 사실이다.

‘보리스 마니아’라는 팬들을 거느린 존슨 시장의 매력은 거침없는 언행과 가식 없는 솔직함이다. 이는 정치인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두 번 결혼한 그는 첫 결혼 때 식장에 남의 바지를 입고 나타났는가 하면, 신부에게서 받은 결혼 반지를 식이 끝난 후 1시간 만에 잃어버리기도 했다. 잦은 실언과 실수로 때론 곤욕을 치르기도 하지만 정치인 존슨의 매력과 인기는 이처럼 덤벙대고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는 성품에 있다. 따라서 존슨 시장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 풍자객이지만 곧잘 다른 풍자객들의 조롱 대상이 되곤 한다.

◇영국의 ‘괴짜’ 정치인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시청에 도착한 뒤 타고온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자전거와 금발의 더벅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AFP
존슨 시장은 영국 사회의 정통 엘리트 코스인 명문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수재다. 하지만 그는 정장을 차려 입고 행동거지가 신사다운 전통적 엘리트 풍모를 싫어한다. 런던 시장이 됐으면 머리를 단정히 빗고 시장 관용차인 롤스로이스를 타고 폼을 잡을 법도 하지만, 신문기자 시절이나 국회의원 시절에 보인 소탈함과 가식 없는 행동 그대로다.

존슨 시장은 자신을 ‘1인 인종 도가니’로 부른다. 그의 증조부는 터키인 피를 지닌 언론인이자 오스만제국 마지막 내무장관을 지낸 알리 케말(1869∼1922)이다. 알리 케말은 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를 배신하고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 때 할아버지에게 영국 국적이 부여됐다. 유럽의회 의원 출신의 아버지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세계은행에서 근무해 국제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이었다. 그는 “나는 조상들의 국제적 혈통을 이어받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혼합된 다문화 세계인”이라고 주장한다.

존슨 시장이 취임 직후 내건 시정 방침 가운데 청소년 범죄 퇴치와 대중교통수단 내 무질서 및 범죄 추방은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당장 6월 1일부터 지하철, 버스, 전차 내 술병 반입과 음주가 금지된다.

이처럼 존슨 시장은 범죄 척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런던 경찰청 책임자 아이언 블레어 경을 불러 “시내에서 범죄율을 끌어내리지 못하면 잘릴 각오를 하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그는 또한 남미 가이아나 출신 흑인 레이 루이스를 4명의 부시장 가운데 한 명으로 발탁했다. 교도소장 출신의 루이스는 유색인종 출신 청소년 범죄로 골치를 앓는 런던 시정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런던에는 인도인 18만여명, 파키스탄인 12만여명, 방글라데시인 8만5000여명 등 100여개국 출신 소수 인종 230만여명이 살고 있다. 런던은 인구의 40%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30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며, 60여개 종교가 뒤섞여 있는 다문화 도시다. 세계를 품 안에 보듬은 도시라는 표현이 자연스런 곳이다. 런던은 또한 세계 금융 중심지로,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30%인 6700억달러가 유통되고 500개가 넘는 외국 은행들이 진출해 있다. 연간 관광 수입만 200억달러가 넘는다.

이 거대 도시의 교통, 치안, 교육, 주택 등 각 분야에 산적한 과제의 개혁 성공 여부가 보수당 집권을 위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존슨 시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준비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떠안고 있다.

존슨 시장은 취임 직후 곧바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 예산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홍보실 등의 인력을 대폭 줄였다. 경찰의 시내 순찰 강화,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한 자전거 타기 장려, 시내 녹색지대 확충, 33개 행정구역의 자치 강화, 청소년 범죄 예방 방안 등 각종 정책들을 봇물처럼 내놓고 있다.

존슨 시장의 첫 사회 생활은 언론계에서 시작됐다. 그는 명문 옥스퍼드대학교 배리얼 칼리지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뒤 타임스 견습기자로 출발했지만, 기사 에 거짓 인터뷰를 인용했다가 쫓겨났다. 그러나 그의 재능과 명석함을 눈여겨 본 데일리 텔레그래프 편집국장에게 인정받아 채용된 후 유럽연합(EU) 특파원, 부국장을 거쳤고, 우파 성향의 정치 주간지 스펙테이터의 편집국장을 맡아 발행 부수를 크게 늘리는 수완을 보였다.

정치에 대한 그의 야망은 2001년 런던의 헨리-온-탬스 지역구에서 보수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보다 두 살 아래지만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학의 동문인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의 배려로 2005년부터 2년간 보수당 ‘그림자 내각’의 예술·고등교육 담당 장관을 역임했다.

존슨 시장은 다재다능하다. TV 토크 쇼에선 거침없는 직설 화법과 유머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어 ‘쇼의 달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당신의 귀를 빌려주시오’ 등 6권의 서적을 저술하고 ‘일흔두 명의 처녀들’이란 소설도 썼다. 브리티시 아카데미 TV상 등 언론 관련 상도 6차례나 수상했다. 그가 쓴 ‘로마의 꿈’이라는 시나리오는 BBC방송 TV 시리즈로 방영됐다.

캐머런 당수와는 경쟁적 동지 관계다. 존슨이 런던 시장에 당선된 것은 앞으로 캐머런 당수의 집권 추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적 동지인 존슨 시장은 미래에 캐머런 당수의 최대 정적이 될 공산이 크다. 언젠가는 그의 욱일승천하는 정치적 인기가 캐머런 당수를 압도할 날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남정호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