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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일산·증평 ‘1인 소방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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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3-25 14:02:56 수정 : 2008-03-25 14: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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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쓰러진다] ② 나홀로 소방관·구급대, 살얼음판
“이런 상황에서 혼자 근무시키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충북 증평의 나홀로 소방관)

“소방관들이 처한 환경은 소방관뿐 아니라 국민 안전까지도 사지로 내모는 겁니다.”(박명식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지역 주민들의 만장도, 추모 행렬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고 조동환 소방장의 운구차와 유족, 동료들을 태운 장례버스는 지난달 28일 일산소방서 영결식장을 쓸쓸히 떠나 시 외곽의 좁은 국도를 따라 달렸다. 얼마쯤 갔을까. 간이공장들 틈바구니로 ‘월드 베스트 경기 소방’ 현수막이 걸린 허름한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차고에는 낡은 소방차 1대가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초라한 노제가 치러졌다. 조 소방장이 24시간 맞교대 근무했던 일산소방서 식사지역대다.

그는 사흘 전(26일) 새벽 3시쯤 인근 T골프연습장의 화재 신고를 받고 혼자 출동했다가 건물 3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영결식에서 만난 소방관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이 낳은 ‘예견된 비극’이라며 비통해 했다.

운구차가 화장터로 떠난 뒤 취재팀은 다시 식사지역대를 찾았다.1인근무의 실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밥 냄새가 났다. 김성진 소방장이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조 소방장의 맞교대 파트너다. 혼자 일하다보니 언제 출동할지 몰라 지역대 안에서 이렇게 손수 밥을 해 먹는다.

“어제 영안실에 있는데 상황실에서 오늘 출근하라고 연락이 옵디다. 대체인력이 없다는 데 어쩝니까. 그래서 오늘 영결식에 못 갔습니다.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인데…, 여기서 노제를 안 지냈다면 평생 한으로 남았을 겁니다.”

그는 조용히 옆방 침상을 바라봤다. 고인과 같이 쓰던 침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이 함께 쓰던 책상 앞에는‘제가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로 끝나는‘소방관의 기도’가 붙어 있었다.

“혼자 있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스피커에서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건물 주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샤워는 생각도 못 하고 머리만 잠깐 감는데 거품이 묻은 채 출동할 때도 있고. 창살 없는 감옥이지요.”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20∼30초 안에 방수복 등을 챙겨 입고 차고 문을 열어 소방차를 꺼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차고 문을 닫고 출발한다. 문을 닫지 않고 출동했다가 도둑이 든 일도 있다. 혼자 운전하며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상황실이나 신고인과 계속 연락해야 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호스를 빼 방수지점에 갖다 놓고 차에 되돌아와 펌프 압력을 높인 뒤 다시 뛰어 호스 끝(관창)을 잡고 물을 뿌린다.

“이렇게 5∼10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 보면 숙련된 소방관이라도 돌발상황에 대처키 어려워요. 더구나 주민들이 불 안 끄고 뭐하냐고 다그치기라도 하면 급한 마음에 안전장구도 없이 불길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러다 조 소방장처럼 사고를 당하는 겁니다.”

취재팀은 지역대에서 1.5km 떨어진 골프연습장에 들렀다. 불이 난 곳이다. 건물 두 동 중 불이 난 왼쪽 작은 동 3층에 올라가니 폭 1m, 길이 2m가량의 널빤지가 두 건물 사이를 잇고 있었다. 고인이 미끄러져 추락한 장소다.

반대편 건물에서는 수십명이 골프 연습에 빠져 있었다. “따악!” “나이스 샷!” 깜깜한 새벽 혼자 사지로 내몰린 소방관의 착잡한 얼굴과 장례식날조차 순직 장소에서 골프 치는 무신경한 얼굴이 겹치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김동진·김태훈·양원보·송원영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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