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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터 보존한다

입력 : 2008-01-02 17:18:20 수정 : 2008-01-02 17: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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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때 창건한 광화문 터.
최근 보존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경복궁 창건 당시(1395년) 광화문 터가 보존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유홍준 청장의 기본적인 생각은 터를 보존하는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수렴해 결정을 내리겠다”고 24일 밝혔다.

복원 방법으로는 창건기 터를 현재 상태로 유지한 채 보호조치를 한 다음 그 위에 광화문을 복원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럴 때 2009년 완공 예정인 광화문의 바닥은 48㎝가량 높아진다.

태조 시기 터를 현재 지점보다 지하로 더 내리고 그 위에 보호 매트를 씌우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경복궁 복원 사업 일환으로 철근콘크리트조로 재건(1968년)된 현재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며 지난해 말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고종 중건기 광화문은 고종 2년(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태조 연간 광화문의 기초 위에 석재를 쌓아 축조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광화문 터를 발굴조사했다. 조사 결과 세종로 아스팔트 30㎝ 밑에 고종 연간의 광화문 터가, 그 아래 지하 70㎝ 지점에서 창건 당시 터가 고스란히 발굴됐다. 특히 태조 시기 광화문은 문헌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지금까지 그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없었으나, 조사 결과 고종 연간 광화문과 그 위치와 좌향(坐向)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온전한 흔적이 드러나면서 창건기 터 보존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됐다. 문화재청이 터를 통째로 들어내고 그 자리에 새 광화문을 짓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주변에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기초공사를 하기 힘들 정도로 지반이 약해져 기존 터를 해체하지 않고는 광화문을 복원할 방법이 없다”며 “해체·이전이 터 보존과 복원 공사의 안정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방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는 광화문 복원이 문화재 원형 보존의 연장선에 있는 만큼 발굴된 기초석을 토대로 광화문을 지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이처럼 잘 보존된 유적은 당연히 그 자리에 보존하는 방식으로 문화재 복원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창건기 기단을 조사하려고 현재 철거해 놓은 고종시대 광화문 터는 경복궁 내 적당한 곳으로 이전해 복원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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