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ㆍ증권사 필요성 인정 불구 못마땅 국책은행이 금융빅뱅의 진원지로 떠오를 움직임이다. 가장 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앞세워 ‘투자은행(IB) 경쟁’에 뛰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6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논의하고 산업·기업·수출입은행의 역할을 변화시키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대우증권의 투자은행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은행은 장기적으로 민영화하는 한편 수출입은행은 위험이 큰 해외투자 부문에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공룡 투자은행’이 탄생한다. 금융빅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군살빼기에 나서야 할 국책은행이 도리어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방안이 감사원의 산업은행 자회사 매각권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화하는 산업은행=재정경제부는 “국책은행의 역할 재정립은 민간 금융회사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정책금융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수도권 담보대출에 나서며 민간 은행과 마찰을 빚어온 산업은행 자회사인 한국인프라자산운용을 이른 시기에 팔기로 했다. 그러나 우량회사채 주선, 인수·합병(M&A), 사모펀드 운영과 같은 투자은행 업무는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을 합해 만들어지는 투자은행에 넘기기로 했다.
투자은행은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는 2009년 이후 국내 금융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될 전망이다.
대우증권의 투자은행 업무 비중은 이 경우 9.1%에서 39.9%로 늘어난다. 국내 최대 투자은행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뤄지는 민영화와 반발하는 민간 금융회사=재경부는 대우증권의 민영화에 대해 “당분간 검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우증권을 선진 투자은행으로 키운 뒤 4, 5년 후 매각 여부를 검토한다는 소리도 나오지만 모든 것은 안갯속일 뿐이다.
조원동 재경부 차관보는 “개발금융 수요와 산은의 기능수행 과정에서 대우증권의 필요성을 감안,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가진 대우증권 지분은 36%다.
금융권에서는 대우증권 매각과 관련한 재경부의 움직임에 대해 지난해 감사원 권고와는 다른 결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산업은행의 5개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라”고 권고했다. 감사원 권고와는 달리 자회사의 민영화를 늦추고 산업은행의 몸집을 키우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재경부의 결정이 토종 금융자원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산업·기업·수출입은행은 재경부 방침을 환영했다. 충격 없이 역할 재조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성태 대우증권 사장은 “글로벌 투자은행의 면모를 갖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빅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중은행과 대형 증권사는 못마땅해한다. 대형 민간 증권사 관계자는 “대우증권도 하루빨리 투자은행으로 변신해야 하지만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증권사 인수에 나선 시중은행도 정부의 이번 조치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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