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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첫 당선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의 정유정씨

입력 : 2007-05-01 12:37:00 수정 : 2007-05-01 12: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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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10代 떠올리며 풋풋한 사랑 그려내”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다. 입시에 매몰되고 일방적인 ‘청소년상’의 굴레에 갇힌 그들이 자발적으로 흥미롭게 읽을 만한, 그들 눈높이에 걸맞은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기성작가나 미등단 문학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소설을 공모,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제정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의 첫 당선작이 탄생했다. 열다섯 살짜리 남자 둘과 여자 하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개 한 마리가 험난한 여정을 함께하며 온갖 우여곡절 끝에 삶의 ‘비밀’ 하나를 손에 쥐게 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같은 흥미와 함께 시대와 유머와 풋풋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은 정유정(41)씨의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가 그것이다.
“어제 저녁 당선 통보를 받고 3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잘랐어요. 이 소설 시작할 때 자르고 두문불출, 작품만 썼더니 머리가 허리까지 길었더라구요. 초고를 완성한 뒤 큰 틀에서만 15번, 소소하게는 100번 이상 고쳐 써서 조사 하나까지 외울 정도입니다.”
당선 통보를 받고 정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다음날 광주에서 올라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대개 초반부가 흥미로우면 갈수록 뒷심이 달리게 마련인데, 이번 당선작은 말미에 이를 때까지 쉼 없이 사건이 이어지며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대단한 입심을 발휘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정씨는 어린 시절부터 백일장 대회를 휩쓸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지향했지만, 보건소 간호사로 일했던 모친이 2남2녀 중 맏이인 그를 기어코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문과로 가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하릴없이 광주기독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2001년, 직장을 팽개치고 집안에 들어앉았다.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는 2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할 때, 집을 장만할 때까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이후에는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받은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국문과 친구들의 소설 숙제를 대신 써주면서 갈증을 달랬고(그 습작들이 담당 교수의 눈에 띄어 격려까지 받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무수히 쓰고 버리는 고독한 시절을 보냈다.
“가슴이 늘 터질 것 같았어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춤을 추는데 빨리 정리는 해야겠고, 생각했던 그대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보면 머리맡에 이야기가 요만큼 자라나서, 며칠 지나다 보면 가지가 무성해져요. 글을 쓸 때는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몇 자밖에 쓰지 않은 것 같은데 하나밖에 없는 아이(12세, 중학교 1학년)는 언제 학교에 갔는지 털레털레 문을 열고 들어서고, 창밖이 금세 캄캄해지고, 다시 날이 밝아오고 그래요. 남편이 이해해주지 않았으면 벌써 소박맞았을 겁니다.”
‘다혈질’의 정씨는 전형적인 공무원인 아버지와 다투면서 ‘굉장히 요란한 10대’를 보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들 나이인 15세는 아이의 세계에 발을 딛고 어른의 창턱에 서 있는 경계”라며 “내가 지나온 10대를 떠올리면 그 또래 아이들의 에너지와 변덕스러움, 한순간의 영악함 같은 심리상태가 생생하게 떠올라 성인을 주인공으로 쓸 때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80년대라는 무거운 시대배경을 깔면서도 유쾌하게 종횡무진 이야기를 풀어가는 당선작을 보면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스티븐 킹이나 마크 트웨인, 커트 보네커트, 존 카첸바크 같은 흥미로운 서사 중심의 서구 작가들을 좋아하고, SF와 심리 스릴러물을 탐독한다. 집안에만 칩거해 답답할 때는 거실에 걸어놓은 샌드백을 치면서 ‘복싱’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그의 ‘이쁜’ 남편이 가끔 ‘무섭다’고 농을 한단다.
“말할 때는 잘 못 느끼는데 글로 쓰면 다들 되게 웃겨서 뒤로 넘어간대요. 새 작품에서는 어벙꺼벙한 남자 둘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의 행동을 구경하며 즐기고 싶어요. 나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보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야기가 좋아요. ”
정유정씨는 이미 ‘열한 살 정은이’(2000년, 도서출판 밝은세상)를 펴낸 기성작가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등단 절차는 밟지 않은 상태에서 첫 작품을 출판사에 보냈더니, 한 직원이 버리려고 쌓아놓은 투고작 뭉치에서 그의 작품을 우연히 한두 장 들춰보다 재미에 빠져 그 자리에서 끝까지 보게 됐고,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두 권을 더 펴냈지만, 제대로 조명을 받지는 못한 편이다.
그는 자신이 지어내는 이야기들이 “피곤할 때 마시는 맥주나 커피 한잔처럼 사람들에게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는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머릿속에서 쉼 없이 들끓는 이야기들을 거침없는 입심으로 종횡무진 풀어내는 그에게서 세계 독서시장을 평정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을 떠올리는 건 섣부른 기대일까.
조용호 문화전문기자 jhoy@segye.com

◇제1회 세계청소년 문학상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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