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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 기웃거리다 자연스레 ''문학의 길''로

입력 : 2007-02-20 15:11:00 수정 : 2007-02-20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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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황순원·부친 동규씨 이어 시내씨 수필집 출간 ''문인 3대'' 탄생 황시내(38·사진)씨가 조부 황순원(소설가), 부친 황동규(시인)에 이어 에세이집 ‘황금 물고기’(Human&Books)를 펴내면서 문인으로 등장, 한국에서는 드물게 ‘문인 3대’를 탄생시켰다. 2대에 걸친 문인가족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지만 ‘문인 3대’는 아직 희귀한 편이다.
“오래전부터 글쓰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을 지니고 있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대신 일기나 편지를 많이 써온 편이지요. 대학 신입생 시절 첫 연주를 앞두고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었던 때처럼 두려워요.”
이번 에세이집에는 황씨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만하임 국립음대, 마르부르크 대학, 미국 테네시 대학 등지에서 작곡과 음악학, 미술사를 공부하는 동안 체험한 오랜 이방 생활의 감상과 미주중앙일보를 비롯한 매체들에 기고한 칼럼들이 담겨 있다. 굳이 선대의 후광에 기대지 않아도 웬만한 기성문인보다 더 아름다운 감성과 반듯한 문장들이 돋보여, 그 자체로 충분히 각광받을 만하다. 독일의 낡은 기숙사에서 밤마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중국인의 피아노 소리를 모티브로 아름답고 쓸쓸한 향수를 그려낸 ‘그 해 봄밤의 중국노래’를 비롯해 할아버지 황순원에 대한 기억을 교직시켜 이방에서 산다는 것의 아픔을 담은 ‘터키인 거리’ 같은 명편들은 황시내의 문재를 증명한다. 책에 삽입한 그림도 자신이 직접 그렸다.
“고2 겨울방학 자율학습 시간에 소설 한 편을 쓴 적이 있어요. 일년간 나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입시준비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었지요. 대학에 입학해 대학신문 문예공모에 응모할 생각도 했는데 아버지가 심사위원이시더군요. 그래서 결국 그만두었고, 이후 문인의 꿈은 꾸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부친 황동규 시인이 역설적으로 딸에게는 문인의 길을 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베토벤을 능가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시인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딸은 음악의 길을 갔다. 그러나 이방을 떠돌며 오랫동안 음악과 미술의 세계에 머물렀던 그 딸은 결국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황동규씨는 오래된 벗 마종기 시인이 미주중앙일보에 실린 시내씨의 글을 보고 책으로 내보라고 권유해, 지난해에서야 비로소 딸의 원고를 접했다. 황시내씨는 아버지에게 원고를 보낸 뒤 “여기서 잘리면 그만이다”는 내심 비장한 마음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평가는 비록 “괜찮네” 정도였지만, 과묵한 아버지의 성정을 아는 딸은 흡족했다.
아버지는 출판사에 딸의 원고를 보냈고, “시내가 산문은 나보다 잘 쓴다”며 “아버지의 재능이 손녀에게 간 것 같다”고 상찬했다. 아버지는 더 나아가 “우리 시내 부추겨서 소설 좀 쓰게 해보라”고까지 권유했고, 공란이던 에세이집의 서문 제목 ‘삶을 새로 시작하며’까지 직접 붙여주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딸의 새로운 삶은 두말할 나위 없이 ‘문학의 삶’이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남편과 함께 시카고에 거주하며 한인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살고 있는 황시내씨. 그는 “어떤 책을 내놓든지 영원히 부끄러움에 시달리겠지만 글을 쓰는 과정만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라고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하고 음전한 소녀’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글·사진 조용호 문화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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