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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⑩ 신라 농업신 신주 모신 ''稻荷大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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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10-04 16:29:00 수정 : 2006-10-04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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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풍년 관장…日전역 2만여곳서 제사 일본 교토시의 남쪽 후카쿠사(深草) 지역에는 전통의 명산인 이나리산(稻荷山)이 아담하게 솟아 있다. 그 산기슭으로 펼쳐지는 큰 사당을 가리켜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라고 부른다. 이 신사(사당)에 모신 주신은 ‘우카노미타마노카미(宇迦之御魂大神)’라는 농업신이다. 이 신라 신은 쉽게 말해서 이 고장의 벼농사 풍년을 관장할 뿐 아니라 일본 전국 벼농사의 풍년도 지켜주는 종주가 되는 최고의 신령이다. 그래서 일본 전국에는 이곳 이나리대사를 본사로 하는 각지의 ‘이나리신사’들이 2만여곳이나 된다니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서기 3∼4세기를 전후한 고대에 신라에서도 백제인들처럼 수많은 사람이 큰 배로 동해를 건너 왜섬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이 고장 고대 야마시로국(山城國·교토 땅) 일대를 개간하여 비옥한 농토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중심은 진씨(秦·하타씨) 가문이었다. 일본 선주민들은 이 ‘하타씨’라는 ‘진씨’들을 잘 따르면서 열심히 신라의 선진 농업 기술을 배워 나갔다. ‘하타씨’의 ‘하타’는 진씨 가문이 신라로부터 바다 건너왔다는 데서 ‘바다’라고 발음하던 것이 ‘하타’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홍윤기 한국외대 교수


그동안 여러 세기가 흘러 일본 고대 벼농사 중심지로 발전한 이 고장 야마시로의 후카쿠사에서 드디어 소문난 큰 부호가 등장했다. 그는 역시 하타씨 문중의 진이려거(秦伊呂巨·하타노이로코 7∼8세기)라는 인물이었다. 이 고장 신라인 호족 가문의 진이려거는 후카쿠사 터전의 가장 재력이 있는 큰 부호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쳤다.
“진이려거는 풍년을 기뻐하며 어느 날 떡을 빚어 하늘에 던지며 활을 쏘았다. 표적으로 삼았던 화살에 맞은 떡은 순식간에 하얀 고니로 변신하여 영마루로 날아 올라갔다. 고니가 봉우리 쪽으로 날아가 앉은 그 자리에서는 신묘하게도 대뜸 고니가 벼이삭으로 변하여 땅에서 솟구쳐 나오는 게 아닌가. 이에 감동한 진이려거는 그 자리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그는 그 터전을 신라 농신의 신령한 성지로 삼고 그곳에다 처음으로 신라 농신을 받드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그 사당이 지금의 교토 후카쿠사의 후시미이나리대사이다.”(야마시로국 풍토기)
‘후시미(伏見)’라는 것은 해마다 풍년을 베풀어주는 거룩한 신라 농신 앞에 엎드려 우러른다는 뜻이라고 일본 고대사의 태두(泰斗)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박사가 필자에게 직접 설명해 준 일이 있다.
우에다 박사는 필자에게 후카쿠사의 명소 이나리대사에 대해 “쿄토의 이나리대사야말로 고대 일본에서 한반도의 벼농사를 일으킨 신라 농업신을 모시고 제사지냈던 유서 깊은 옛 터전으로 결코 망각할 수 없는 사당입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우에다 박사는 “해마다 11월8일에는 일본 왕실의 11월23일 밤 제사인 니이나메노마쓰리(新嘗祭) 때와 똑같은 제사가 이나리대사에서 거행됩니다. 이때 제사의 무용 음악인 ‘어신악(御神樂)’이 거행됩니다. 물론 이 제사에서도 왕궁 어신악과 똑같은 한신(韓神)이라는 한국신을 모시는 신내리기의 강신(降神) 축문이 낭독됩니다. 이 제사 때에 거행되는 제사 춤은 역시 일본 왕실과 똑같은 ‘한신인장무’(人長舞)라는 춤입니다. 언제 한번 11월8일에 저와 함께 직접 가보시죠. 궁사님도 소개해드리죠”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자택에서 우에다 박사는 필자에게 덧붙여 이렇게 권유했다. ‘한신’이라는 일본 왕실의 축문에는 한반도의 신라 아지매(阿知女) 여신을 부르는 신라어(경상도말)의 강신 축문이 나온다. 이것에 관해서는 앞으로 상세하게 밝히겠다.



◇고니가 날아 앉으며 벼 이삭이 솟은 이나리산 광경(왼쪽), 신라 농신을 모신 사당.


“이 고장으로 볍씨를 가지고 도래한 진씨 일가는 일찍부터 강물에다 강뚝을 막아 저수지와 수로를 만드는 ‘관개농업’을 시작했다. 강에다 하구언을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수로 건설 기술은 극히 어려운 공법이어서 종래의 토목과 관개 기술은 말짱 헛것이었다. 이때에 새로운 선진 문명을 가진 진씨 가문이 신라로부터 건너와서 재래의 기술에다 새로운 기술을 베풂으로써 한층 향상된 작업이 성립되었다. 거기서 비로소 물의 소통이 조악하여 논농사에 적합하지 못한 척박한 토지도 옥토로 바뀌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나라 시대(710∼784년)의 사료에도 진씨 가문이 ‘가도노의 큰 둑’(かどののおおい)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도게쓰교(渡月橋:교토 서부 가쓰라강의 긴 교량) 다리 약간 북쪽 상류부에 큰 뚝을 기념하는 돌비석이 서 있으며, 나는 바로 그곳을 그 옛날의 가도노대언 터전으로 보고 있다”(稻荷信仰の國際的環境 1996년)는 것이 교토산업대학 고대사학자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 1940∼ ) 교수의 주장이다.
이노우에 교수는 신라인 진씨 가문에서 만들었던 교토 ‘가쓰라강(桂川)’의 큰 댐인 방조제에 관한 기록들이 생생하다고 고증하고 있거니와 한반도의 선진 관개농업의 발자취는 근년에 경상북도 안동 땅 청동기 유적에서 발굴되어 화제가 된 바 있기도 하다.
“지금부터 벌써 2000년 전 무렵부터 신라 땅에서 본격적으로 저수지며 보의 자취가 발굴되었다”는 것이 지난해 5월, 이한상 교수(동양대 박물관장)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므로 저수지며 댐 건설 등 신라인들의 관개농업이 지금부터 1600년 전에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는 이노우에 교수의 연구는 납득할 만하다.
현재 ‘교토시립역사자료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노우에 교수는 신라인 호족 진씨 가문에 대해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진씨 가문의 인물이 이나리대사를 창설했다는 점이다. 진씨는 도래인 가문이다. 도래인이란 고대에 조선으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진씨 가문은 조선 반도의 동부, 지금의 대한민국 동반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모국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과거에 경주 땅을 왕도로하는 신라라는 국가가 있었으며, 주로 이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열도로 건너 왔다. 민족 대이동이다.”(‘古代の 日本と 渡來人’ 1999년)
진이려거라는 신라인 큰 부호가 고대에 이 터전에서 벼농사로서 크게 성공한 때문에 조상의 농신 ‘우카노미타마노오카미’를 제사 지내게 된 것이 오늘에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자못 주목할 만하다. 이나리대사의 경내 10여곳에 여우상이 서 있어서 이 또한 이르는 곳마다 참관자의 눈길을 끈다. 이 여우는 신라 농업신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사자로, ‘이나리즈시’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일본의 생선초밥집에서는 기름에 노랗게 튀긴 자그만 유부 주머니에 양념한 초밥을 넣어서 준다. 이것의 이름이 바로 ‘이나리즈시’이며, 이나리신사의 여우에게서 생겨난 명칭이란다.



◇이나리신사의 모내기 축제 행사.


이나리대사에는 여우 말고도 옛날부터 늑대의 전설도 유명하다. 늑대 설화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진이려거의 윗대 선조인 6세기 조정의 고관이 된 진대진부(秦大津父·하타노오쓰치)에게서 나온다. 6세기 중엽의 진대진부라는 신라인은 이 고장 후카쿠사에 살던 큰 부호였다. 그는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말을 탄 채 ‘이세(伊勢)’ 지방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때 한 마리의 늑대가 다른 늑대에게 피투성이가 된 채 물려 뜯기고 있었다. 진대진부는 그 늑대를 가엽게 여겨, 부하들에게 사나운 늑대를 쫓아버리게 했다. 이래서 몹시 다친 늑대는 빈사지경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서였다. 후카쿠사의 진대진부의 저택으로 왕실의 고관들이 찾아왔다.
“수장(首長), 진대진부공 안녕하십니까. 대왕마마께오서 수장님을 모시어 오라는 어명을 받들고 왔나이다.”
진대진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긴메이대왕(欽明大王 539∼571년)이 자기를 부른다는 게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긴메이대왕은 요즘 새로이 왕위에 즉위한 사람이다(이 당시까지는 왕호가 천황이 아니고 대왕이었으며 약 100년 뒤인 서기 669년 이후부터 일본 왕실은 왕 또는 대왕의 칭호가 천황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다). 진대진부는 긴메이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전 보지도 못한 자기를 부르는 게 이상스러웠다. 물론 나라의 왕도로부터 과히 멀지 않은 고장 후카쿠사 땅의 수장이니 어쩌면 즉위한 새 왕의 부름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진대진부는 조정에서 온 신하를 따라서 말을 타고 나라의 조정에 이르게 되었다. 즉위한 긴메이왕은 진대진부를 보더니 크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긴메이왕은 지금까지 후시미의 후카쿠사 땅에서 농토를 개간하면서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크게 번창하는 신라인 지도자 진대진부를 융숭하게 대접했다. 왕은 함께 수라를 들면서, 어린 시절에 꾼 꿈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소년 시절의 긴메이왕은 꿈에 수염이 허연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노인은 소년에게 “장차 진대진부라는 사람을 찾아내서 잘 위해주라”고 했던 것이다. 긴메이왕는 진대진부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그동안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진대진부는 근자에 싸움에 크게 다친 늑대를 구해서 숲으로 무사히 돌려보냈던 사실을 아뢰었다. 진대진부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들은 왕은 크게 감동했다. “인자한 그 마음씨. 그 가여운 늑대가 필시 그대에게 은혜를 갚게 되었나보오. 잘한 일이오.”
그 뒤로부터 진대진부는 긴메이왕과 친하게 지내면서 왕실을 돕게 되었고, 그의 부귀와 명성 또한 더욱 더 커졌다. 그런데 이상의 ‘늑대 설화’는 일반적인 전설이 아니고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에 나오는 역사 기록이다.
이후에도 교토 지역의 진씨 가문에서는 수많은 명인이 계속 나와서 명성을 떨쳤다. 진대진부공에 뒤이어 진하승(秦河勝·와타노카와카쓰 6∼7세기)공은 신라 진평왕이 왜 왕실에 보내준 적송(赤松) 나무불상인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통칭 일본 국보 제1호)을 교토의 우스마사(太秦) 땅에 모셔다 지금의 고류지(廣隆寺)를 세웠다.
한국외대 교수 senshyu@yahoo.co.kr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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