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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부대 말만 믿고 입대…민간인 학살說은 사실무근

항일독립군 토벌 ''간도특설대'' 1기생 이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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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1-18 16:52:23      수정 : 2008-01-18 16:52:23
◇일제가 만든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이용씨
그런 인물이 강원도 정선의 외진 곳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뜻밖이었다. 육군 소장, 강원도지사, 교통부 차관, 철도청장, 인천제철 사장….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그는 산골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은둔’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용(李龍·85), 해방 전엔 이집용(李集龍)이었다.

이방인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은 그였지만, 서울에서 네 시간 남짓 자동차를 몰고온 취재팀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이렇게 6월 중순과 하순 취재팀은 두 차례 그를 방문했고, 다시 두 차례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와의 대화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자 ‘역사 탐사’였다.

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이력’이 있었다. 해방 전 이력, 구체적으로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1932∼45년)에서의 행적이었다. ‘간도특설대’(1938∼45년). 바로 일제가 만주에서 “조선인 항일세력은 조선인의 손으로 잡는다”는 목표 아래 친일파를 앞세워 만든 조선인 부대로,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 부대 1기생으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복무했다. 1938년 지원 당시 그의 나이 17세. 그는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조선인 부대라고 하기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동기는 ‘순수’했는지 몰라도 군인이 된 그는 항일독립군과 싸우며 일제 침략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물이 됐다. 그렇게 만주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틀 속에서 출세를 도모했던 이들은 많다. 육참총장, 합참의장, 교통장관을 지낸 백선엽(87·간도특설대 출신)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간도특설대 근무설에 휩싸여 있다.

대다수는 ‘옛일’을 속이거나 끝내 덮어둔 채 이미 세상을 떴다. 몇 안 되는 산 자들도 열이면 열 입을 다무는 현실이다. 그 시절의 선택과 행동이 떳떳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까. 백씨도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골치 아프게 왜 옛날 일 갖고 그러느냐”며 끝내 만남을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달랐다. 그 시절의 기억을 숨기지 않았다. “만주에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했다”(간도특설대 출신으로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김석범 회고·1987년 ‘만주국군지’)는 따위의 모순된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 시절을 고백했다. 그는 간도특설대에 대해 제대로 증언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시대를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그는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말라”며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공은 공대로 평가하고 과는 과대로 밝히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느냐”는 말에 “사실대로 밝히고 후세에 전해야지”라고 답했다. 이 같은 관점이 고백의 배경인 듯했다.

그는 다만 재중동포(조선족) 사회에서 간도특설대의 만행으로 전해지는 부녀자 성폭행,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군기가 엄한 부대로, 민폐는커녕 오히려 도와준 일이 많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간도특설대 근무설에 대해서는 “아니다. 그분은 만주 보병 8퇀(團)”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비밀광복군 활동설에 대해서도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간도특설대에 있었나.

“아니다. 없었다.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1944년쯤 베이징 부근에서다. 각각 팔로군 토벌작전 중이었다.”

―박 대통령이 당시 안투 명월구에 있던 간도특설대에 자주 왔다는 증언이 있는데.

“그분은 만주군 제8퇀 소속으로 활동영역이 좀 달랐다. 간도특설대는 열하로 옮기기 전 백두산 밑 안투현에서 토벌을 했다. 토벌 대상은 김일성 부대였다.”

―박정희·신현준이 광복군 김학규 장군에게서 “적당한 시기에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1945년 7월에 베이징에서 다시 철석부대로 돌아오는 등 비밀광복군이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거짓말이다.”

―그걸 어떻게 아나.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때 내가 그 부근(베이징)에 있었으니까.”

―간도특설대 창설 목적은 알았나.

“몰랐다. 한국 사람들로 이뤄진 군대라고 해서 갔다.”

―간도특설대에 죽 있었나.

“1938년 이등병으로 들어갔다가 42년 봉천(지금의 선양) 육군훈련학교에 들어가 44년 졸업하고 소대장(소위)으로 진급했다.”

―육군훈련학교에 다니는 동안 간도특설대를 떠나 있었던건데, 그 기간에 박정희가 왔으면 몰랐을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분은 8퇀에 있었다.”

―해방 후 행로는.

“해방되자마자 남한으로 왔다가 46년 4월쯤 다시 만주로 갔다. (왜 돌아갔나) 뭐, 고향이 거기니까. 모친도 거기 있었다. 그러다 남한 갔다 왔다고 해서 붙잡혀 옌지감옥에 갇혔다. 4개월쯤 살다가 노역장에 장작 패러 불려나갔을 때 탈출했다. 튀어본 사람이나 알지, 담을 넘어서 한 100m까지가 아주 무섭다.”

특별취재팀=류순열·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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