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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프리즘]전남 돌풍주역 ''신병호''

관련이슈 김신성의 스타프리즘

입력 : 2002-08-02 17:36:00 수정 : 2002-08-02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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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서 ''팀의 희망''으로 "남들과 달리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서 삶이 더 깊어졌다고 해야죠. 그래서 큰 욕심은 없어요.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의 프로축구 K-리그 선두 질주를 주도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신병호(25)에게 핸드폰을 걸면 ''여행을 떠나요''라는 밝은 노래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그를 실제 만나보면 나이답지 않은 겸손함이 배어 나온다.
''K-리그 드래프트 불참,일본J리그 연습생,브라질 축구아카데미,J2리그 생활….'' 그는 축구선수로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고난한 역정을 거쳐 이젠 전문 골잡이로 훌쩍 큰 것이다.
◆둘째형 따라 시작한 축구=신병호는 1977년 4월 제주시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던 아버지 신동진(53)씨와 어머니 김광채(50)씨의 3남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축구를 시작한 것은 둘째형 병철(28)씨 때문. 아버지는 87년 몸이 허약한 둘째형에게 축구를 하라고 했고 마라도나의 신기에 매료됐던 신병호도 자연스럽게 따라했다. 5학년 때(89년) 태극전사 최진철을 배출한 제주서초등학교로 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에 뛰어들었다. "진철이형은요, 그냥 전설로만 내려오는 까마득한 선배였죠, 제가 제주서초 6학년때 진철이형은 고3이었는데 헤딩을 무지하게 잘 하드라고요."
◆진짜 남자 김남일=신병호는 제주중 시절 현재 전남의 동갑나기 동료인 김남일과 만났다. 부평동중의 5관왕을 주도하던 김남일과 시도대항 4강전에 맞붙은 것. 신병호는 이후 대기고 시절 고교대회, 올림픽대표 시절에도 김남일과 만나며 우정을 쌓아왔다. "남일이야말로 진짜 남자예요. 말은 별로 없는데 한번 하면 딱 부러지죠. 부평고 주장이던 남일이를 보고 카리스마를 느꼈을 정도니까요."
신병호는 대기고 박정일 감독의 조련을 받아 골잡이로서 거듭났다. "그전엔 볼을 잘 차면 공격수가 되잖아요, 그런데 박 감독에게서 후방에서 골 잡았을 때 위치선정, 코너-프리킥에서 몸싸움 등 세부적인 것을 배웠죠."
◆촉망받던 신예=신병호도 한땐 촉망받는 선수였다. 건국대 3년 때인 98년초 차범근 감독이 98프랑스월드컵대표팀 멤버로 깜짝 발탁했다.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지만 1개월간 기라성같은 선배를 옆에서 보며 자긍심을 키웠어요." 99년 1월 허정무 감독이 올림픽대표로 뽑아 장래를 보장받는 듯했다. 99년 10월 3일 잠실에서 열린 시드니올림픽예선 중국전에서 터뜨린 헤딩결승골은 그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죠. 그냥 다가와 눈물을 흘리는 팬들, 오빠라 부르며 자지러지는 여학생들, 아득한 추억이죠."
◆준비안된 해외진출=하지만 이때부터 인생이 꼬였다. 신병호는 J리그 한 팀이 그를 부를 것이라는 매니저 이모씨의 말을 듣고 11월말이 기한인 K-리그 드래프트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언론에는 마치 드래프트를 거부한 것처럼 비쳐지고, 그 팀은 입단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정말 미치겠더군요." 신병호는 이후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중국의 충칭 등에서 테스트만 받다가 2000년 4월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그해 6월 무릎인대부상으로 정식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시드니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일본 친구들이 ''기무치, 기무치''라고 놀려도 참았지만 한번은 운동장에서 실수을 했는데 또다시 ''기무치''라고 해 멱살을 잡고 대들었더니 그 이후엔 기무치라고 부르지 않더군요. 아무튼 적응하려고 무척 노력했는데 정식계약에 실패해 너무 안타까웠어요."
◆축구화로 꼬신 브라질=신병호는 2000년 12월 계속된 좌절을 피해 브라질로 훌쩍 떠났다. 사실상 현실 도피였다.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여자친구(유지영)가 ''그만두더라도 한번은 더 몸부림쳐 보자''고 울면서 만류했어요. 그때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브라질 3부 그레미오 축구아카데미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며 음식과 언어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 특히 전화를 할 수 없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 아카데미 친구에게 축구화를 주며 꼬셔 한국에 전화하곤 했다. 지난 해 6월 J2리그 미토 홀리호크에 입단한 그는 11골을 넣었고 드래프트가 풀린 지난 해 12월 울산 현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회택 감독과의 인연=신병호는 울산 시절 아디다스컵에 7경기에 출전, 1골을 넣는데 그쳤다. 7경기 가운데 풀타임 출장은 1번뿐이었다. 결국 전남 드래곤즈로 옮겼다. 여기에는 이회택 감독과의 인연이 작용했다. 사실 신병호가 96년 건국대에 진학할 당시 한양대를 맡고 있던 이 감독은 신병호에게 한양대 진학을 적극 권유했었다. "이 감독은 나와 인연이 맞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이 감독에게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김용출기자 kimgija@sgt.co.kr

▶신병호의 축구 인생
▲프로필
-1977년 4월 26일 제주 출생
-1990년 2월 제주서초 졸업
-1993년 2월 제주중 졸업
-1996년 2월 대기고 졸업
-2000년 2월 건국대 졸업
-2000년 4월∼12월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연습생)
-2001년 3월∼5월 브라질 3부리그 그레미오 클럽
-2001년 6월∼12월 J2리그 미토 홀리호크
-2001년 12월∼4월 울산 현대
-2002년 5월 전남 드래곤즈 입단
▲경력
-19세이하 청소년대표(1995년)
-시드니올림픽대표(1999∼2000년)
-1999년 10월 3일 시드니올림픽예선 중국전 결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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