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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세모녀 참사 잊었나”…물폭탄에도 ‘막고 덮고’ 빗물받이, 소용없다 [김기자의 현장+]

입력 : 2023-06-30 11:00:00 수정 : 2023-06-30 14: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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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판 위에 고인 빗물…빗물받이 ‘소용없다’
빗물받이를 청소해도 돌아서면 쓰레기가 가득
폭우 땐 저지대 침수 우려…각종 오물이 빗물타고 아래로 ‘둥둥’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골목길 일대 다수의 빗물받이는 각종 오물과 쓰레기로 꽉 막혀 있어 빗물이 고여 있다.

 

“오늘 같은 날이라도 빗물받이를 열어 놔야 하는데. 귀찮거나 까먹거나. 당연한 듯 덮어요.”

 

지난 29일 오전 용산구 숙대 인근 골목길에서 만난 한 주민이 이렇게 말했다. 이날 수도권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령이 내려진 가운데 빗물받이를 살펴보았다. 각종 고무 발판 등으로 덮여있는 빗물받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덮여 있던 빗물받이에는 어김없이 썩은 담배꽁초 눈에 띄었다. 힘줘 꾸겨 넣은 듯한 각종 생활 오물이 검은 때가 잔뜩 낀 채 입구를 막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쓰레기·담배꽁초 무단투기 금기 감시카메라 단속촬영 중.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라는 경고문도 소용이 없었다.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 오물이 빗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 오물이 빗물을 타고 깨진 인도에 스며들거나 고무판에 고여 맡기도 힘든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인근 주민 김(51) 모 씨는 “CCTV가 있으면 뭐 하냐. 단속하던가. 구청에서 신경 써서 치우든가 해야지”라며 쓰레기 더미 주변에서 언성을 높였다.

 

서울 용산구 한골목길 인근 다수의 빗물받이는 각종 고무 덮개로 덮여 있다.

 

이날 거센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우산을 써도 무릎 아래가 젖을 정도였다. 골목길에는 제때 치워지지 않았단 탓에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잔 쓰레기들이 빗물을 타고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빗물받이가 곳곳에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빗물이 흡수되지 않는 각종 고무 덮개로 덮여있는 탓에 배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그 위로 그대로 흘러 내려갔다.

 

쏟아진 빗물이 도로는 물론 움푹 파인 빗물받이 위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기도 했다.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빗물받이에는 각종 오물과 함께 퇴적물처럼 쌓여 넘치는 곳도 있었다.

 

각종 오물과 쓰레기로 꽉 막혀 있는 빗물받이.

 

빗물받이가 막히고 덮여있는 탓에 빗물은 경사면을 타고 흐르면서 유속은 빨라졌고, 건물 배수관에서 흐른 빗물까지 더해지자 좁은 골목길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람들은 신발이 젖을까 흐르는 빗물을 위태롭게 피해 다녔지만, 물이 고여 있거나 유속 탓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발 앞코를 타고 흘려들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좁은 골목길 탓에 차가 지나칠 때마다 혹여 자신에게 물이 튈 것을 우려해 피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인근 주민 최(61) 모 씨는 “신고해도 똑같다”라며 “청소라도 제때 하면 좋은 게 그것도 안 한다. 주변 상가에서 쓰레기 버리지, 또 악취 난다고 고무판으로 덮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신림동 반지하 세 모녀 참사 잊었나”…또다시 꽉 막힌 배수구

 

도로 곳곳에 설치된 소형배수 시설 빗물받이.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막혀 있던 빗물받이 쓰레기로 가득 차 들썩이거나 음식물쓰레기와 각종 오물이 섞여 도로로 역류하기도 한다. 집중호우라도 내리는 날에는 쓰레기 때문에 빗물이 흘러들어 가지 못해 침수를 막기는커녕 저지대 주택의 침수 피해를 발생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빗물받이가 막히고 덮여있는 탓에 빗물은 경사면을 타고 흐르고 있다.

 

지난해 8월 8일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는 하루 최대 강수량과 시간당 최대 강수량 모두 역대 최고치 기록하면서 서울 관악·동작구 반지하촌 거주민들에게 악몽 같은 날이었다.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서울청사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의 지난 8일 일강수량은 381.5㎜에 달했다.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되는 서울 기상 대푯값으로 정해진 공식 기록상 일강수량 최고치 354.7㎜(1920년 8월2일)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였다. 1907년에 서울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115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도 볼 수 있다.

 

고품판으로 덮은 탓에 움푹 파인 빗물받이 위에 빗물이 고여 있다.

 

시간당 강수량을 보더라도 신대방동에는 8일 오후 8시5분부터 오후 9시5분까지 1시간 동안 141.5㎜의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됐는데, 이 역시 서울의 시간당 강수량 최고치 공식기록 118.6mm(1942년 8월5일)를 80년 만에 뛰어넘었다. 서울의 21만 반지하촌 가운데 관악구와 동작구에만 약 3만호가 밀집해 있고, 그만큼 피해도 집중됐다. 관악구 신림동에선 모녀 등 일가족 3명이, 동작구 상도동에선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빗물받이가 덮여있는 탓에 빗물은 경사면을 타고 흐르고 있다.

 

빗물받이는 빗물을 하수관으로 흘려보내는 수방 시설로 쓰레기·흙·담배꽁초·덮개 등으로 막혀 배수가 원활하지 않을 땐 적은 비에도 도로가 침수될 수 있어 구청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지만, 미관저해와 악취 이유로 덮개로 덮어놓는 등 빗물받이 설치 목적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 빗물받이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빗물받이는 자치구별로 흡입이나 인력에서 정해진 구역에서 청소한다”면서 “올해부터 특별 대책으로 빗물받이 전담 관리자 배정해 음식점 밀집 지역 등 순찰하면서 불법 덮개로 덮어 놓는 경우 제거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의 신고가 있으면 자치구 담당자가 바로 나가서 치우거나 제거해 배수 불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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